순창 체계산(책여산) 화산옹바위 금돼지굴
순창 체계산(책여산.冊如山) 화산옹바위(華山翁의 神秘) 금돼지굴(金 돼지 窟)
일자; 2010년 4월 10일(토) 날씨; 맑음
1. 산명; 화산옹바위~금대지굴(金 돼지 窟)~체계산(책여산.冊如山 화산 송대봉)△342m~남원 책여산△361m
2. 위치; 전라남도 순창군 적성면 고원리 신적성교
3. 인원; 출발산악회 36명
4. 차량이동(갈 때);
♤08:00 도시철도 동래역 앞<산악회관광버스>→만덕터널→북부산T.G→남해고속도로→09:50 문산휴계소(10분)→섬진강교→순천I.C→호남고속도로→11:15 옥과T.G→11:30 순창→11:40 순창 적성면 고원리 신적성교 도착
♤차량이동시간; 3시간40분
▼ 순창 체계산(책여산) 화산옹바위 금돼지굴 트랙지도
5. 산행코스;
♤11:45 신적성교 앞→11:50 화산옹바위(華山翁의 神秘)→卍무량사→12:12 금돼지굴(金 돼지 窟)→12:14 마귀할멈바위→12:21 금돼지굴 정상△322m→12:25 하양하씨 묘×330봉→12:35 당재→12:45 체계산(책여산.冊如山 화산 송대봉)△342m→13:04 돌탑(공터)→13:14 암릉→13:18 철다리구간→13:24 산불감시초소(장군바위.330m)→13:5 칼바위 암릉지대→13:53 괴정삼거리(24번 국도)→13:55 괴정교→24번 국도 산길오름→암릉지대→14:14 두꺼비바위→14:23 안부→암릉지대→14:33 남원 책여산△361m→하산능선→암벽우회→밤나무단지→15:07 농로→15:20 구송정체육공원/캠핑장(순창 동계면 서호리) 도착 <캠핑장 샤워 및 하산주 1시간15분>
♤산행시간; 3시간35분
♤산행거리; 약 6.5km(도상거리)
6. 트랙 순창 체계산(책여산) 화산옹바위(6.5km).gpx
▼ 순창 체계산(책여산) 화산옹바위 금돼지굴 산행지도 / 5만
▼ 순창 체계산(책여산) 화산옹바위 금돼지굴 10만 지도
순창의 채계산(책여산,화산,송대봉)은 회문산, 강천산과 더불어 순창의 3대 명산의 하나로서 일명 화산(華山)이나 화산(花山) 또는 적성산과 책여산(冊如山)등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순창의 책여산과 남원의 책여산이 순창~남원간 국도 24번도로인 괴정삼거리(괴정교)를 기점으로 남과 북으로 뻗어있다.
이 산 정상은 깎아지른 듯한 채계산(책여산)의 송대로 날아가는 새들조차 위태로워 이곳을 앉기를 꺼려했다는 날카로운 봉우리로 되어 있고 또한 정상에서 남원 책여산으로 가기 위해 꼭 지나쳐야 할 설악산의 작은 공룡능선을 옮겨 놓은 듯한 암릉 구간이 산행의 묘미를 느끼게 하고 지날 때는 오금이 오싹 저릴 정도의 아슬아슬한 암릉 구간이 이 산의 매력 포인트인 짜릿한 스릴을 맛 볼 수가 있어 요즘 급격히 많이 알려지고 있는 산 중의 하나라고 본다.
하늘을 향해 삐죽 튀어나와 길게 이어진 아슬아슬한 바위를 걸어보고 서양 장기판같이 생긴 청보리 밭을 느릿느릿 휘돌아 감도는 파란 섬진강을 바라본다.
순창군 적성면에 있는 책여산은 이름이 여러 개다.
순창군 적성면에 있는 해발341m 의 책여산. 먼저 책여산 앞에 순창이라는 지명을 붙는 까닭은 고개를 사이에 두고 남원 책여산이 있기 때문이다.
순창 채계산(釵笄山)은 화산(華山․ 花山)이나 책여산, 또는 송대봉(松薹峯)이라고도 하며 특히 깎아지른 봉우리는 새들조차 위태로워 앉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책여산은 이름도 여럿이지만 전해오는 재미있는 얘기도 많다.
최영 장군이 장수군 산서면 치마대에서 화살을 날린 후 말을 달려 송대봉에 도착했는데 화살이 날아오지 않아 화살보다 늦게 도착했다며 자신이 타던 말의 목을 베었다는 얘기.
그런데 말의 목을 벤 후에 화살이 날아와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다는 것이다.
▼ 11시45분 고원리 신적성교 앞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신적성교 앞에서 섬진강이 흘러가는 주변 풍경을 둘러본다.
▼ 11시46분 무량사 표석을 따라 7분 정도 오르면 화산옹바위을 만난다.
▼ 11시51분 체계산(책여산) 유래 안내판이 화산옹바위 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 11시53분 화산옹바위에 이른다.
※ 화산옹(華山翁)바위의 전설
남원에서 서쪽으로 50여리 떨어진 순창군 적성면 고원리에 책여산(冊如山)이라는 명산이 있다. 산 중턱에 화산옹이라는 이름의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보는 위치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옆에서 보면 흡사 가을 메뚜기가 벼 이삭에 앉아 입질하는 것 같고 뒤에서 보면 몸집이 우람한 장군이 투구를 쓴 것 같다. 앞모습은 도포 입은 백발노인옹이요. 머리는 영락없이 미륵불이다.
그래 그런지 별명도 가지가지다. 메뚜기바위. 장군바위. 미륵불. 화산옹. 아마도 이렇게 많은 별명을 여러 개 가진 명물도 없을 것이다.
아득한 옛 날부터 화산옹은 신기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풍년이 들려면 아름다운 백색을 띄웠고 흉년이 들려면 흑색을, 큰 불이 나거나 돌림병이 퍼질 때에는 청색을 띄었다. 그리고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에는 적색으로 변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행인이 채계산(책여산)을 지나갈 때, 화산옹에게 경의를 표하고 가면 무사하거니와 만일 그렇지 않으면 다리를 삐거나 하는 사고를 당하기 일 수였다. 말이나 수례 탄 이도 이와 같았다.
그리하여 화산옹은 외경과 민간신앙의 기복 대상이 되었으니, 흉년이 들면 고을 원님이 화산옹에게 기우제를 드렸고 불임여성은 아기를 점지 받으려고 새벽에 정화수를 떠 올리고 백일 치성을 올리기도 했다.
어느 날 전라감사 김 삼봉이 금감주에 은투구를 쓰고 백마에 높이앉아 수십명의 수하들을 거느리고 위풍도 당당하게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장이 하마하여 화산옹에게 예를 올리고 갈 것을 권유하자 감사는 더욱 거드름을 피웠다. “요망스런 바윗덩이가 무엇이건데 대장부의 기개를 꺽는단 말이냐? 라고 호통을 치고는 장검을 뽑아 화산옹을 내려치자 어깨가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 그 아래 섬진강 물속으로 빠져 버렸다.
그 뒤로 화산옹은 영험을 잃어 괴병과 재앙이 그치지 않더니 지기(地氣)마져 쇠해져 적성현이 폐지되어 버렸다.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일이라고 한다. 현재 화산옹은 최치원 선생의 탄생설화와 관련이 있는, 그 뒤 상봉에 있는 금돼지 굴과 더불어 체계산(책여산)의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 11시53분 화산옹바위 앞에 설치된 화산옹바위 전설 안내판
「화산옹의 신비」는 적성강 변에서 백발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화산옹'이라 불리는 바위가 가진 신비한 예언 능력을 전해 주는 신이담이다. 마을 사람들은 영험한 바위라 여겼는데, 이를 믿지 않고 경솔하게 행동한 병사 때문에 말이 죽고 바위가 훼손당해 그 영험함을 상실하여 마을이 폐허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순창의 명산인 채계산은 화산이라고도 불린다. 화산 아래에 적성강이 흐르고 있으며 그 강변에 거대한 흰 바위가 서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백발노인이 우뚝 서 있는 모습 같다 하여 사람들은 이 바위를 '화산옹'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 화산옹은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화산옹의 색깔이 희고 맑게 보이는 해에는 풍년이 들었고, 검은색을 띄면 흉년이 들었다. 또한 큰 불이 난다거나 전염병이 도는 해에는 파란색으로 변하였고, 전쟁이 나거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는 붉은색으로 변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화산옹 앞에서 기우제를 지냈고, 아이를 갖지 못한 아낙들은 그 앞에서 치성을 드렸다. 또한 화산옹 앞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공손하게 경의를 표하고 지났고, 말을 타고 가는 사람은 반드시 말에서 내려 공손히 절을 하고 지나갔다. 이것은 화산옹이 영험한 바위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화를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한 병사(兵使)가 화산옹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를 수행하는 아장(亞將)은 화산옹의 영험함에 대해 병사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는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출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병사는 천하의 명장이 한낱 바위에 예를 갖추기 위해 말에서 내리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며 그대로 말을 타고 유유히 지나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몇 발짝 가지도 못해서 잘 가던 말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러자 병사는 더욱 화가 나서 병졸들에게 화산옹을 부숴버릴 것을 명하였다. 그런데 병졸들이 화산옹의 목을 치자 화산옹의 목에서 피가 흘렀고, 그 목은 데굴데굴 굴러서 적성강 물속으로 굴러 들어갔다.
그 후로 화산옹의 영험은 사라지고 때아니게 천재지변과 괴변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끝내는 적성현이 폐허가 되었다.
▼ 11시54분 화산옹바위를 뒤로하고 무량사로 이어간다.
※ 순창 적성면과 동계면에 걸처있는 산으로 남원과 순창의 경계에 놓여있는 높지 않은 산이지만 아름다운 산이다. 화산석옹을 보고 이어지는 산행길 무량사절간 앞으로 올라 금돼지굴 그리고 금마귀할멈바위 금돼지굴 정상 33봉을 거쳐 안부에서 체계산 정상으로 오른다. 철계단으로 비교적 안전시설이 잘되어있으므로 초보자도 쉽게 오를수있는산. 섬진강을 좌측에두고 이어지는 산행길은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조망으로 멀리는 지리산. 강천산을 조망 할 수있으며 지척에있는 남원의 명산 고리봉. 문덕봉을 손에잡을듯 가까이할수있고 적성의 넓은들과 섬진강의 아름다움이 잘 조화된 한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느낌의 산 이다.
▼ 11시58분 무량사에서 금돼지굴로 산길 이어간다.
※ 체계산(釵笄山) 금돼지굴(金 돼지 窟)
낭자머리에 비녀를 꽂은 형상 같다는 채계산(釵笄山)은 지형학 용어로 호그백(hog back)에 해당한다. 호그백은 퇴적암의 층리가 지각 변동으로 급격하게 기울어 층리면이 가파른데다가 반대 사면도 단층에 의해 잘리어 나가 급경사를 이룸으로써 양쪽이 모두 험준한 산 능선으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봉우리를 가리킨다. 채계산 정상부의 날카로운 능선은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섬진강 본류를 막아섰다. 채계산의 동쪽 사면은 퇴적암의 층리면에 해당하는 급사면이고 서쪽 사면은 섬진강이 지나가는 단층에 의해 잘린 급사면인 단층애(斷層崖)[fault scarp]이다.
채계산 중턱 약 290m 높이에 큰 바위가 튀어나와 있고 그 바위 밑, 구 적성교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금돼지굴이 위치한다. 금돼지굴은 호그백인 채계산의 단층애에 형성되었다. 단층애가 형성된 채계산 북서 사면은 퇴적암에 남아 있는 층리가 책을 쌓아 놓은 것처럼 켜켜이 관찰된다. 금돼지굴은 층리 사이가 빗물의 용식(溶蝕) 작용에 의하여 제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돼지굴 주위는 소나무가 울창하며, 참나무 등의 활엽수도 끼어 있다.
채계산은 341m로,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험한 편이다. 그러나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조망이 좋아 등산객이 많이 찾는다. 금돼지굴은 높이와 폭이 3m 내외 규모로 마치 칼로 도려낸 듯 위, 아래, 측면이 서로 직각을 이루고 등산로와 이어진 내부가 평탄하게 6~7m 연장되어 있다. 금돼지굴은 국도 24호선과 섬진강이 만나는 적성교 인근의 무량사 입구에서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등산로는 도로변에서 채계산 기슭을 비스듬히 남쪽으로 오르게 조성되었다. 무량사에서부터 급경사의 사면을 올라 능선을 따라 오르다 보면 안부(鞍部) 약 10m 아래에 형성된 금돼지굴이 보인다.
▼ 12시12분 금돼지굴이다. 금돼지굴에서 마귀할멈바위을 거쳐 금돼지굴 상봉으로 이아간다.
※ 금돼지굴(金 돼지 窟)
「사람으로 변한 금 돼지」는 돼지로 변신한 금돈(金豚)이라는 사람이 미색을 탐하는 관리들을 경계하고자 현감의 여자를 납치하지만 결국 자기도 미색에 빠졌고, 마지막으로 잡혀간 현감의 부인이 기지를 발휘하여 금 돼지를 물리쳤다는 괴물 퇴치담이다. 이를 「채계산의 금 돼지」, 「아내를 구출한 현감의 슬기」 등이라고도 한다. 한편, 후에 사람으로 변신한 금 돼지와 현감의 부인 사이에서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을 낳았다는 점에서는 동물 교구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옛날부터 채계산은 화산(華山)이라고도 불렸는데, 명산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비스러운 일이 많이 일어나는 산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산의 중턱에는 큰 바위가 하나 있었고, 그 아래 큰 굴이 있었다.
옛날 금돈이라는 사람이 이 굴에 기거하면서 수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화산의 신령님이 나타나 무슨 소원이 있어 이렇게 기도를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어찌 대답할지를 몰라 그냥 내뱉은 말이 "돼지처럼 근심 없이 영원이 살고 싶습니다." 하였다. 신령님은 그러면 그렇게 해 주겠다고 하였다.
금돈이 눈을 떠 보니 정말 돼지가 되어 있었다. 깜짝 놀랐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막상 근심이 없는 돼지가 되고 보니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이 정말 어이없었다. 그래서 미색을 탐하는 사람들을 혼내 줄 생각으로 현감의 부인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는데, 결국 자신도 미색을 탐하게 되었다.
적성현은 예로부터 미색의 고장으로 유명하였다. 그래서 지방 수령들은 적성 현감이 되기를 소원하였고, 서로 앞을 다투어 손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적성 현감으로 부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현감의 부인이 감쪽같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수색을 하여도 찾을 길이 없었다. 물론 이것은 돼지가 된 금돈이 잡아간 것이었다. 이런 일이 수차례 거듭되자 나중에는 서로가 적성 현감이 되기를 꺼려했고, 그래서 현감 자리가 비어 있게 되었다.
이때 머리는 현명하나 관운이 없어 현감 자리 하나 얻지 못한 최씨라는 사람이 적성 현감을 자원하고 나섰다. 현감 자리도 비어 있으니 곧바로 적성 현감으로 부임할 수 있었다. 새로 부임한 현감은 꾀를 내어 부인과 굳은 약속을 하였다.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정신만 차리면 반드시 화를 면할 것이니 절대로 당황하지 말라고 하고, 무슨 일을 당하면 자신이 반드시 구해 낼 것이니 자기의 뜻을 따라 달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오색으로 물들인 명주실 타래 하나를 부인의 허리춤에 매달아 놓고 괴변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임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자정이 넘은 시각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면서 현감은 정신이 가물가물해졌는데 한참 뒤에 정신을 차려 보니 부인은 온데간데없고 명주실만 늘어져 있었다. 현감은 명주실을 따라가 보니 '금 돼지 굴'로 이어져 있었다. 숨을 죽이며 조심스럽게 금 돼지 굴로 들어가 보니 촛불이 켜 있고 여러 명의 여자들이 놀고 있었는데, 금 돼지는 현감의 부인 무릎에 누워 부인을 희롱하고 있었다.
부인은 현감과 이미 약속이 돼 있던 터라 금 돼지의 비위를 맞추며 밖에 나가서 함께 살자고 했다. 그러자 금 돼지는 아무 것도 무서운 것이 없으나 사슴의 가죽만이 제일 무섭다고 했다. 몰래 숨어 있던 현감과 수색대도 이 말을 들었으나 사슴 가죽을 쉽게 구할 수도 없었다. 설사 구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금 돼지 몰래 부인에게 전할 길이 없었다. 부인을 구출해야 하는 현감의 입장에서는 정신이 아찔하였다.
그때 부인의 머리에 스쳐 가는 것이 있었다. 바로 주머니에 들어 있는 문갑의 열쇠 끈이었다. 열쇠 끈이 바로 사슴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부인은 열쇠를 꺼내어 그 끈을 금 돼지의 코에 대었다. 그랬더니 금 돼지는 큰 울음소리를 내면서 신음하다가 사지를 떨며 죽었다.
그런데 죽어 있던 것은 돼지가 아니고 사람이었다. 굴속에 갇혀 있던 여인들도 무사히 구출되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적성현에 다시는 괴변이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 후에 현감의 부인에게 태기가 있었다. 만삭이 되어 낳은 것은 아들이었다. 그런데 금돈을 닮은 것 같았다. 이 사람이 장성하여 대현으로 알려진 최치원 선생이 되었다고들 하는데, 그래서 최치원 선생은 화산 금 돼지의 아들이라는 말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한다.
「사람으로 변한 금 돼지」의 주요 모티프는 '여자를 잡아가는 괴물', '여인의 슬기', '괴물 퇴치', '최치원 탄생' 등이다. 동굴에 살면서 여자를 잡아가는 괴물을 물리친 괴물 퇴치담은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地下國大賊退治說話)[지하국에 사는 괴물을 퇴치하고 납치된 여자를 구해 내어 혼인한다는 이야기]의 변형된 설화로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사람으로 변한 금 돼지」에서는 여자의 슬기로 위기를 극복하고 금 돼지로 등장하는 괴물을 퇴치하지만, 최씨 현감의 아내가 금 돼지와 통정하여 낳은 아들이 바로 최치원이라는 점에서는 동물 교구담이자 신이담으로 의미를 풀이할 수도 있다.
▼ 12시14분 마귀할멈바위에서 금돼지굴 정상으로 10여부이면 충분하다.
▼ 12시21분 바위뭉태기가 쌓여있은 금돼지굴 정상에서 능선길 5분이면 무덤이있은 330봉에 도착한다.
▼ 12시25분 하양하씨 묘가있은 330봉에 올라선다. 조망이 터이는 곳이라 주변을 살펴볼수있고 체계산 정상은 안부를 거쳐 20여분이면 도착한다.
▼ 12시26분 330봉을 뒤로하면서 가야할 체계산을 바라보고 능선 안부로 내려간다.
▼ 12시29분 능선 안부로 내려가면서 올려다 본 체계산이 더욱 더 높이 보인다.
▼ 12시45분 철계단을 타고 올라 체계산 정상에 도착 한 후 빽하여 다시 내려가서 능선길 이어간다.
▼ 12시46분 체계산(책여산) 정상에 닿은다. 체계산은 많은 이름을 보유하고있다 화산 송대봉 등등 ..
▼ 12시46분 체계산 정상에서 가야할 칼날 같은 암릉이 시원하고 장엄하게 펼쳐진다.
▼ 12시46분 체계산 정상에서 가야할 능선 좌측으로 섬진강과 어울러진 적성면 들판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구름속에 강천산이 신선처럼 쳐다보고있다.
▼ 12시47분 체계산 정상에서 지나온 안부와 금돼지굴과 금돼지굴 정상이 어림되고 330봉이 우뚝하게 서서 쳐다본다.
▼ 13시04분 돌탑이있은 능선길 공터에서 점심밥 묵고,
▼ 13시12분 능선 안부에서 암릉길 기다리고 있다.
▼ 13시14분 연속으로 이어지는 암릉의 스릴
▼ 13시17분 암릉에서 지나온 체계산과 그뒤 하양하씨 묘가있은 330봉이 버티고 섰다.
▼ 13시18분 철계단과 철다리가이어지는 암봉 앞에서 우측 뒷편으로 남원의 문덕봉 고리봉이 시커먼 하늘의 구름 아래에서 웅장하게 모습을 보여준다.
▼ 13시18분 철계단 앞 암봉에서 한컷 하고 철계단으로 오른다.
▼ 13시21분 가야할 철계단과 철다리가 암릉길을 받쳐주고 그뒤 장군바위 옆에 산불감시초소가 희미하게 보여진다.
▼ 13시22분 철다리 중간에서 지나온 철계단과 아까 한 컷한 바위 덩치를 쳐다본다.
▼ 13시24분 장군바위에서 가야할 능선과 남원 책여산. 저기가 예전의 행정구역이 남원군에서 순창군으로 바뀌었은데, 그래서 남원 책여산(체계산)으로 부른다고 한다네.
▼ 13시25분 철계단 암릉구간에 이어서 칼바위 암릉구간이 이어지면서 좌측으로 단애하 절벽아래 섬진강과 적성면 들판이 '한폭의 동양화'다.
▼ 13시27분 신적성교 앞 산행출발점이 그만 암릉 직벽에 살짝 묻혀지고,
▼ 13시29분 칼바위 암릉에서 가야할 능선을 바라보며 한 컷 한다.
▼ 13시33분 칼바위 암릉에서 휘굽이 돌아 흐르는 섬진강과 적성들판 그뒤 강천산 추월산 용추봉 등등 구름속에서 희미한 모습을 보여준다.
▼ 13시34분 신적성교 앞 산행 출발지가 조망되고 화산옹바위 무량사 일광사로 이어지는 넓은길이 보여진다.
▼ 13시42분 암릉길에서 고도를 낮추어지면서 가야할 남원 책여산이 크게 닥아오면 '어서오세요'하고 10여분후 24번 국도에 내려 선다.
▼ 13시53분 괴정삼거리 앞 도로변에서 우측으로 2분 괴정교을 지난후 건너편 능선으로 오르면 남원 책여산으로 이어진다.
▼ 13시55분 적성교 앞 남원 책여산 들머리에 체계산 등산안내도
▼ 13시56분 괴정교 앞 도로변에서 급경사 능선 오른후 암릉구간으로 이어진다.
▼ 14시14분 능선에서 두꺼비바위을 만난다.
▼ 14시27분 남원 책여산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멋진 소나무와 어울려 '한폭의 산수화'을 짜아낸다.
▼ 14시28분 능선에서 추월산 강천산 라인, 시커먼 구름아래에서 어려운 표정을 하면서 살짝 당겨보니 따라온다.
▼ 14시30분 능선에서 뒤돌아보니 적성들판과 섬진강 적성교 .. 지나온 체계산 칼바위 암릉이 벌써 추억으로 흘러간다.
▼ 14시33분 남원 책여산(체계산) 정상에 올라섰다. 선답자가 정상 바위위에 돌을 쌓아 정상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 14시35분 남원 책여산 정상에서 가야할 능선이 안부로 이어져서 동계면 서호리 구송정체육공원으로 이어간다.
▼ 14시55분 능선에서 고도가 팍 낮추어지면선 가야할 밤나무밭과 농로 그리고 노란색원이 섬진강에 삼각지로 형성된 구송정체육공원 산행종점이다.
▼ 15시08분 농로에서 지나온 남원 책여산과 밤나무과수원.
▼ 15시19분 서호리 구송정체육공원에 이르러 오토캠핑을 즐기는 캠핑족이 자연을 즐기고 있다.
▼ 15시20분 서호리 구송정체육공원에서 산행거리 6.5km 3시간35분 산행을 종료하고, 현지에서 산악회가 준비한 하산주가 이어진다.
구송정체육공원/오토캠핑장에서 산행 뒷풀이 1시간15분 부산으로 차량이동하여 20시10분 동래 광혜병원 앞에 도착한다.
▼ 부산출발산악회 하산주
▼ 서호리 구송정체육공원의 조형물
▼ 부산으로 이동중인 부산출발산악회 버스 내부에서 .. ㅎㅎ 멋지고 좋은 놈 ㅋ
▼ 순창 체계산(책여산) 개념도
▼ 순창 체계산(책여산) 지도
▼ 순창 체계산(책여산) 지도
▼ 순창 체계산(책여산) 지도
▼ 순창 체계산(책여산) 5만 지도
※ 순창 체계산 일광사(一光寺)
회문산과 강천산과 함께 순창군의 3대 명산으로 불리는 체계산. 귀부인의 낭자머리에 비녀를 꽃은 형상과 닮았다 해서 책여산(冊如山)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산은 날아가는 새들조차 위태로워 이 곳에 앉기를 꺼려했다는 날카로운 봉우리를 지녔으며, 고려말 최영 장군이 이곳에서 말을 타고 화살을 쏘며 무술을 익혔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 순창군 체계산에 위치한 한국불교 태고종일광사에서 바라본 섬진강이 아름답다
체계산의 그림자는 그 앞으로 흐르는 굽이굽이 섬진강 물길을 따라 이어져 있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체계산의 초입에는 한국불교 태고종 일광사(一光寺)가 자리하고 있다. 일광사는 체계산 암자에서 기거하던 김세현 대사가 지난 1948년 창건한 사찰로, 현재는 한국불교 태고종에 소속된 선동스님이 대표주지로 있다.
▼ 일광사 전경
현재 불자들은 물론 4계절 내내 체계산과 섬진강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특히 이곳은 국내 사찰로는 짧은 65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대웅전에 17세기 중반의 조각승인 혜희(慧熙)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있다.
▼ 목조관음보살
문화재청이 발행한 ‘한국의 사찰문화재’에도 수록된 이 목조관음보살좌상이 이곳에 모셔지게 된 연유는 창건자인 김세현 대사가 입적하면서 현재는 알 방법이 없다.
또 복장세트 곁 표지에 함풍 4년(1854년)에 불상을 금으로 덮는 개금(改金)을 했다는 사실이 표기돼 그 이전에 제작됐을 것으로만 추측될 뿐, 복장유물을 아직 개봉하지 않아 정확한 제작연대와 제작자도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독특한 착의법(着衣法)과 형태, 장식방법 등을 고려했을 때 17세기 중반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법령파의 조각승 혜희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 김정희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도 지난달 이 같은 취지의 소견문을 통해 “아직 복장유물이 조사되지 않아 불상의 조성연대와 조각승 등이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양식적 특징으로 볼 때 17세기 중반경의 조각승인 혜희의 작품으로 추정된다”며 “이 상은 17세기 불상유파 중 하나인 법령파의 불상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자 조선후기 보살상의 한 계보를 이루는 작품으로 그 가치가 높다고 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공주 갑사 대적전 좌협시보살상과 금산 보석사 대웅전 좌협시보살상, 진천 영수사 목조보살좌상, 순천 송광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 등 혜희가 조성한 대부분의 보살상이 문화재로 지정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일광사는 문화재로서 큰 가치가 있을지 모를 이 관음보살좌상을 보다 잘 모시기 위해 지난해 전통사찰 지정을 신청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일광사는 그러나 사찰 대부분이 목조로 이뤄진 만큼 자칫 화마에 휩싸일 경우 소중한 문화재가 소실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전통사찰 지정을 꾸준히 신청할 계획이다.
▼ 옛 일광사
선동 스님은 “이 부처님(불상)의 모습이 삼성각에 보관된 개금 이전의 사진과 달라 현재 원형의 모습으로 다시금 개금하려 해도 제작연도가 오래되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며 “전통사찰과 문화재로 등록이 되면 이곳에 봉안된 부처님(불상)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임실 순창 5만 지도 체계산(책여산)
7. 차량이동(올 때);
♤16:35 구송정체육공원/캠핑장(순창 동계면 서호리)→24번 국도→남원→17:20 남원T.G→88올림픽고속도로→17:40 지리산휴계소(10분)→18:05 함양J.C→통영대전고속도로→18:20 산청T.G→3번 국도→18:30 산청 신안→18:48 만남휴게소(10분.산청 생비량면 가계리)→19:00 대의고개→의령읍→군북T.G→남해고속도로→20:00 진영휴계소(10분)→북부산T.G→만덕터널→21:10 동래 광혜병원 앞 도착
♤차량이동시간; 4시간35분
8. 경비;
♧회비20,000원
9. 특기사항
10. 작성일자; 2010년4월 11일(일) 00시 09분 자택에서................
11. 작성자; *********************651-10-09*******************도시속의 野人 海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