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선운산(경수산 수리봉 천마봉 청룡산 비학산 구황봉 형제봉) 종주
고창 선운산(경수산 수리봉 개이빨산 청룡산 비학산 구황봉 형제봉) 종주 일자; 2011년 3월 16일(수) 날씨; 맑음 눈보라 흐림 1. 산명; 경수산△444.3m~선운산 수리봉△336m~개이빨산△346.1m~천마봉△270m~청룡산△314m~쥐바위봉~비학산△307.4m~구황봉△299m~노적봉△249m~형제봉△248m 2. 위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전원민박 3. 인원; 청노루 ♣고창 선운산도립공원 부안 변산반도국립공원 2일째(6박7일) 4. 차량이동(갈 때); ▼ 고창 선운산 종주 트랙지도 5. 산행코스; 원점회귀 ♤06:20 삼인리 전원민박→06:30 삼인교→06:32 도로에서 급경사 능선오름→06:59 능선(10분)→07:50 ×346봉→08:28 경수봉삼거리→08:32 경수산△444.3m(삼각점) 빽→09:03 싸리재→09:15 벌봉△339m→09:23 마이재→09:50 선운산 수리봉△336m(도솔산)→10:09 참당사갈림길→10:37 개이빨산△346.1m(삼각점)→10:51 소리재→11:00 천상봉△270m→11:11 도솔암갈림길→11:28 낙조대→11:37 천마봉△270m→11:53 병풍바위→12:20 배맨바위→12:34 청룡산△314m(삼각점)→13:00 쥐바위봉(점심22분)→13:31 국기봉△337.8m→13:55 희어재→14:22 비학산△307.4m→14:29 구암리갈림길→15:00 병풍바위→15:03 안장바위→15:31 안부사거리(선운사.병바위)→15:42 구황봉△299m→16:03 노적봉△249m→16:15 형제봉△248m→16:35 안부/좌측 하산→16:45 삼인종합학습원→16:55 전원민박 도착 ♤산행시간; 10시간25분 ♤산행거리; 21.7km(도상거리) 6. 트랙 ▼ 고창 선운산 종주 산행지도 ▼ 고창 선운산도립공원 10만 지도 선운산은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린 채 도솔왕비와 중애공주를 데리고 입산수도하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천연동굴인 진흥굴이 그 전설을 뒷받침하여 준다. 1707년 쓰인 '도솔산선운사 창수승적기(創修勝蹟記)'에 다음과 같은 선운사의 창건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진흥왕은 왕위를 버린 첫날밤에 좌변굴(左邊窟, 진흥굴)에서 잠을 잤다. 꿈속에서 미륵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중애사를 창건하고 다시 이를 크게 일으켰는데, 이것이 선운사의 시초라고 한다. 한창 때는 암자 89개, 당우 189채, 수행처 24개소 그리고 승려 3,000여명을 거느린 대찰이었다 한다.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선운사 대웅전뒤편 동백 숲은 5천여평의 면적에 수령이 약 500년 정도로 3천 그루가 군락을 이루며, 3월 하순부터 5월 초순까지 꽃을 피운다. 동백은 절에서 불을 키기 위한 동백기름을 얻기 위하여 심었다고 한다. 또, 선운사는 위덕왕 24년(577년) 백제의 승려 검단선사와 신라의 국사이자 진흥왕의 왕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러지는 선운산은 노령산맥의 지맥으로 서해안과 접하고 있으며 선운사는 금산사와 더불어 대한불교 조계종의 전북 2대 본사로 한국의 명승고찰로 유명하다. 현재 선운사에는 보물 5점, 천연기념물 3점, 전라북도유형문화재 9점, 전라북도문화재자료 2점 등 총 19점이 있다. ▼ 06시20분 삼인리 전원민박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이른봄 새벽의 공기가 차거운것을 느끼며 산행 들머리 삼인교을 향하여 길을 재촉한다. ▼ 06시29분 삼인교가 저 앞 어둠속에 보이고 06시32분 도로변에서 어두움이 남아있은 능선으로 진입하여 30여분 급경사와 너덜과 시름하면 능선에 올라서면 경수산 정상까지 2시간 정도 걸린다. ▼ 06시59분 능선에 올라 배낭을 벗어놓고 땀을 훔치며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10분 휴식한후 능선길 이어간다. ▼ 07시18분 능선 우측으로 아래, 주진천이 흐르고 22번 국도가 따라간다. ▼ 07시28분 생짜베기능선.ㅋ 20여분 346봉에 이르고 346봉에서 경수봉 정상까지는 40여분 더 가야한다. ▼ 08시19분 능선길 우측으로 곰소만과 내일 부터 수일간 산행 할 변산의 풍경이 흘러든다. ▼ 08시19분 능선길, 진행방향 경수산이 올려다 보인다. ▼ 08시21분 능선길 좌측으로 오늘 산행 할 선운산 종주 라인의 풍경을 살펴본다. 1 개이빨산 수리봉 천마봉 낙조대 청룡산 쥐바위봉 국기봉에서 희어재까지 흐르고. ▼ 08시21분 오늘 산행 할 선운산 종주 능선 2. 희어재에서 비학산 구황봉 노적봉 형제봉으로 ~~ ▼ 08시29분 경수산삼거리에서 우측 경수산 다녀와서 능선길 이어간다. ▼ 08시32분 경수산 정상에서 삼각점 찍고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가서 벌봉 수리봉 개이빨산 낙조대 천마봉으로 이어간다. ※ 경수산(鏡水山)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와 심원면 월산리에 걸쳐 있는 선운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경수산에서 바라보는 곰소만[줄포만]의 바닷물과 주진천[인천강]의 물이 거울같이 맑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지리산은 전체를 지칭할 때는 지리산이라 하고, 그 산에 소속된 모든 봉우리들은 산으로 부르지 않고, 주봉은 천왕봉, 제2봉은 반야봉·중봉·하봉·바래봉·제석봉 등으로 부른다. 하지만 선운산은 봉우리마다 ‘산’과 ‘봉’을 함께 쓰고 있어 혼선이 온다. 따라서 산 전체를 지칭할 때는 선운산, 그리고 선운산에 소속된 봉우리들은 모두 ‘봉’으로 표기해야 옳다고 여겨진다. 예컨대 선운산 주봉은 도솔봉 또는 수리봉[도솔산, 336m], 상봉은 경수산·비학산·개이빨산·청룡산으로 표기한다. 경수산은 고창 선운산 도립공원에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로 주진천[인천강] 하구를 가운데 두고 높이가 같은 소요산[444.2m]과 나란히 솟아 있다. 선운산의 경수산은 소요산과 높이가 같아서 형제봉으로도 불리고 있다. 산줄기는 호남정맥 내장산 까치봉과 백암산 중간 지점의 순창새재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영산기맥[영산강 분수령]의 구황산에서 북쪽으로 갈라져 나온 선운지맥[선운산 줄기]이 삼태봉-왕제산-선운산 청룡봉-천마봉-개이빨봉-도솔봉을 거쳐 경수산에 닿는다. 물줄기는 북동쪽은 줄포만[곰소만]과 주진천[인천강], 남쪽은 도솔천이 주진천[인천강]에 합류한 뒤 줄포만[곰소만]으로 흐른다. ▼ 08시34분 선운산 종주능선길 가야할 풍경이.하늘과 구름 그아래에는 山. 아름다워.. 청노루 박목월 머언 산(山)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 청(靑)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 08시51분 벌봉 수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따라 쫄쫄 나도 흘러간다. ▼ 08시53분 능선길 우측으로 서해 바다와 고창 심원면 연화리의 풍경. 6분후 싸리재에 닿고 이어서 10여분후 벌봉(339m)에 올라선후 내려가면 마이재다. ▼ 09시23분 무덤이있은 마이재에서 30여분 능선 오르면 선운산 정상 수리봉에 당도한다. ▼ 09시48분 수리봉 정상 옆 조망처에서 바라보는 선운사와 도솔암계곡이 은은하고 그위에 가야할 능선이 구름속에 파묻히기 시작한다. ▼ 09시50분 선운산 정상 수리봉에 도착한다. 예전에는 도솔산으로 명명되기도 한다. ※ 선운산(禪雲山) 높이 336m. 도솔산(兜率山)이라고도 했으나, 유명한 거찰 선운사가 있어 선운산이라 불리고 있다. 주위에 소요산(逍遙山 : 444m)·개이빨산(345m)·황학산(黃鶴山 : 109m) 등이 있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서해와 곰소만이 있으며, '호남의 내금강'이라고도 한다. 산마루는 비교적 급경사를 이루며, 동쪽에서 발원하는 하천은 인천강에 유입하여 곰소만으로 흘러든다. 1979년 12월에 이 일대 43.7㎢가 선운산도립공원(禪雲山道立公園)으로 지정되었다. 입구에서 약 4㎞에 걸쳐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184호)이 펼쳐져 있으며, 봄에는 꽃병풍을 이룬 계곡의 아름다움이 절경을 이룬다. 남동쪽 사면에 있는 선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다. 경내에는 대웅전(大雄殿 : 보물 제290호)·금동보살좌상(金銅菩薩坐像 : 보물 제279호)·금동지장보살좌상(金銅地藏菩薩坐像 : 보물 제280호)·선운사석씨원류(禪雲寺釋氏源流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4호) 등 보물 3점, 도지정문화재 8점 및 비지정문화재 30여 점이 있다. 또한 절 입구에는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시비(詩碑)가 있다. 선운사에서 서쪽으로 1㎞ 정도 떨어져 있는 참당암 대웅전은 보물 제803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운사에서 도솔암에 오르는 길목에 있는 진흥굴(眞興窟)은 좌변굴(左邊窟)이라고도 하며,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중생구제를 위해 도솔왕비와 중애공주를 데리고 입산·수도한 곳이다. 도솔암(兜率庵)은 선운사 남서쪽 약 2.5㎞ 지점에 있으며, 깊은 계곡과 울창한 소나무·대나무 숲, 절벽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암자 앞에는 높이 20m가 넘는 천인암(千因巖)이라는 절벽이 있으며, 서쪽 암벽 위에는 상도솔암(上兜率庵)이라고도 하는 내원암이 있다. 그 밑의 절벽에는 미륵장륙마애불(彌勒丈六磨崖佛)이 조각되어 있는데, 머리 위에는 거대한 공중누각을 만들어 보호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용문굴(龍門窟)은 기출굴(起出窟)이라고도 하는데, 검단선사가 절을 짓기 위해서 도솔암 서쪽 용태에 살고 있던 용을 몰아낼 때 용이 가로놓인 바위를 뚫고 나간 구멍이라 하며 그 터[址]가 내원암 남쪽에 남아 있다. ▼ 09시52분 선운산 정상 수리봉에서 내일 가야 할 변산반도를 살짝 당겨보아도 잘 따라오지않은다. ▼ 09시54분 능선길 소나무. 우쩌다가 산에서 어렵게 만나는 경우가있다. ▼ 10시28분 수리봉에서 견치산(개이빨산)으로 향하는 능선길 이정표에 0.8km라고 표시한다 견치산 정상까지. ▼ 10시31분 개이빨산 정상 주변에서 지나온 능선과 참당사. 조은 사찰인것 같은데. ▼ 10시33분 가야할 능선 우측으로 펼쳐지는 고창군. 능선위 바위 ? ▼ 10시37분 돌탑과 삼각점이있은 개이빨산(견치산) 정상에 도착하여 15분 정도 능선길 내려가면 소리재에 닿은다. ▼ 10시51분 소리재에서 낙조대까지는 1.0km라고 표시하고 이후 부터 선운산의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난다. ▼ 11시00분 지도표기 천상봉(270m)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능선에 불과하고 가야할 능선을 바라본다. ▼ 11시05분 능선길 데크계단에서 .. ▼ 11시07분 능선길 흐려지든 날씨가 시간이 지나면서 제법 큰 함박눈이 쏟아지고 천마봉을 함 당겨서 본다. ▼ 11시11분 우측으로 용문굴 도솔암갈림길. 오늘은 거리와 시간 관계로 스쳐지나고 조망은 즐겨한다. ※ 용문굴 선운사 창건설화에 등장하는 굴이다.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산 도솔암 지나 자리하고 있다. 이 굴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577년(백제 위덕왕 24) 검단선사가 절을 세울 목적으로 선운산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와서 보니 선운사 자리의 연못에 용이 한 마리 살더라는 것이다. 그 용은 검단선사에 의해 쫓겨났고, 급히 도망치다가 바위에 부딪히며 굴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용문굴이다. 해발 336m의 선운산에는 용문굴 외에 신라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이 있다. 진흥굴, 도솔암, 용문굴, 낙조대, 천마봉 등을 두루 돌아보는 산행이 일품이다. 그리 힘들지 않고 시간도 약 3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오전에는 천마봉에 오르면 도솔암 마애불에 해가 들기 시작하는데, 앙다문 부처의 입이 빛을 받아 미소짓는 것처럼 보인다. 해거름녘에는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주 그만이다. ▼ 11시15분 당겨서 본 천마봉 ▼ 11시16분 당겨서 본 낙조대. ▼ 11시22분 낙조대로 닥아간다. ▼ 11시26분 낙조대 아래에서 천인바위와 도솔암 마애불 .. ※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高敞禪雲寺東佛庵址磨崖如來坐像) 보물 제1200호. 백제의 위덕왕이 선사 검단(黔丹)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불상을 조각하고, 그 위 암벽 꼭대기에 동불암(東佛庵)이라는 공중누각을 짓게 하였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 불상은 낮은 부조(浮彫)로 된 장대한 크기의 마애상으로서 결가부좌 (結跏趺坐)한 자세로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뾰족한 육계(肉髻)가 표현된 머리는 육계와 머리의 구별이 불분명하다. 이마에 백호(白毫: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가 돋아 있는 네모진 얼굴은 다소 딱딱하다. 하지만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가느다란 눈과 우뚝 솟은 코, 앞으로 쑥 내민 듯한 두툼한 입술 등으로 인하여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두 귀는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보물 제215호)이나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에서처럼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는데 힘이 없다. 목은 머리와 몸체가 거의 맞붙어 드러나지 않으나 가느다란 선으로 된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좁고 평평한 어깨에 걸쳐 입은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옷주름 선이 선각(線刻)으로 지극히 형식화되어 있다. 입체감이 결여된 평판적인 가슴 아래로는 선명하면서도 단정한 군의(裙衣)의 띠 매듭이 가로질러 새겨져 있다.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펼쳐 아랫배에서 서로 맞대고 있는 큼직한 두 손은 사실성이 떨어져 있다. 손 아래에 드러나 있는 두 발 또한 손과 마찬가지로 크게 조각하였는데, 양감 없이 선각화되어 있다. 층단을 이루어 비교적 높은 대좌의 상대에는 옷자락이 늘어져 덮여 있다. 하대는 매우 간략화되고 형식화된 복련화문(覆蓮花文)을 표현하였다. 광배는 표현되지 않았다. 머리 위를 비롯한 이 불상의 주위에는 수많은 네모난 구멍들이 패어 있다. 이것은 아마도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불상 앞에 전실(前室)을 마련하였던 목조전실(木造前室)의 가구(架構) 흔적으로서 마애석굴을 모방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체에 비하여 머리와 손발이 커진 경향, 육계와 머리의 구별이 없이 육계가 뾰족한 점, 가슴 아래로 가로질러 새겨진 네 가닥의 군의의 띠 매듭 그리고 탄력성이 줄어들고 세부 묘사에 있어 정교함이 결여된 불상 양식 등에서 고려시대 말기 조각의 전통적인 수법을 보이고 있다. ▼ 11시28분 낙조대에 도착한다. 여기서 동쪽으로 250m 정도 거리에 있은 천마봉 다녀와서 종주능선으로 이어간다. ※ 선운산 최고의 절경이라는 낙조대.. 암봉에서 바라보는 칠산앞바다 낙조는 천마봉에서 내려다보는 도솔천계곡의 경관과 더불어 선운산 경관의 쌍벽을 이룰 만큼 좋다. 낙조대는 몇 개의 집채만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개의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저녁 해를 보면 최고의 절경이라 한다. 더구나 2004년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MBC드라마‘대장금’에서 최상궁이 자살하는 배경이 선운산 천마봉의 낙조대였고, 장금의 어머니 돌무덤이 용문굴이었다. ▼ 11시33분 낙조대에서 천마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에서 가야할 병풍바위가 함박눈을 맞으며 나를 기다린다. ▼ 11시36분 천마봉 정상에서 벌어지는 풍경. 아 !! 조타. ※ 선운사 마애불 비기탈취 사건(禪雲寺磨崖佛秘記奪取事件) 동학농민혁명 당시 손화중이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의 비기(秘記)를 훔쳤다고 전해지는 사건. 조선 후기 조선 왕조의 봉건적 질서가 해이해지면서 농업·산업·수공업·신분 제도 등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당시 조선은 전국 각지에서 조선이 곧 멸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광범위하게 퍼져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는 오래전부터 떠도는 예언에 따른 것으로, 조선 왕조는 500년이라는 숙명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상황 아래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는 민중들의 바람과 더불어 새로운 사상도 도래하였다. 곧 동학사상으로, 당시 고창 지역에도 동학사상이 팽배해 있었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은 선운사 도솔암 왼편 칠송대라 불리는 암벽에 양각되어 있는 미륵 좌상으로 머리 위 암벽에 사각형 구멍이 10개 이상 있으며 부러진 목재들이 보인다. 전설에 따르면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은 백제 위덕왕이 검단선사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불상을 새기고, 그 위 암벽 꼭대기에 동불암(東佛庵)이란 공중누각을 지었다고 한다. 따라서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을 ‘동불암 마애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슴 한가운데에는 배꼽과 같은 돌출부가 있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의 돌출부에 비기가 들어 있는데, 이 비기를 꺼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소문이 있었다. 곧 1820년 전라감사 이서구가 마애불의 배꼽을 열어 보기 전부터 복장 감실을 둘러싼 전설이 널리 유포되었다. 이곳에는 신기한 비결이 들어 있어서 그것이 세상에 나오는 날에는 한양이 망하는데, 비결과 함께 벼락살도 들어 있으므로 거기에 손을 대는 사람은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것이다. 이서구가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의 배꼽에서 서기가 뻗치는 것을 보고 뚜껑을 열어보니 책이 들어 있었는데 갑자기 벼락이 치는 바람에 ‘이서구가 열어 본다’는 대목만 얼핏 보고 다시 넣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다. 그 뒤로도 여러 사람들이 열어 보고자 하였으나 벽력이 무서워서 열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무장 지역에서 최대 동학 조직을 가지고 있는 손화중은 동학교도들과 함께 이 비기를 꺼냈다고 전해진다. 황현의 『오하기문』과, 김재홍(金在洪)의 『영상일기』에 의하면 1892년 8월 전라도 무장현에 큰 지목(指目)이 일어났는데 도내의 유수한 두목은 물론 동학당이라면 개인까지도 잡아들여 무장 감옥에 때려서 가두었다고 한다. 선운사 용문암 석불 배꼽에 있는 비결을 훔쳐 갔다 하여 강도 행위이며 역적 모의였기 때문이다. 관헌들은 이 사건을 빌미로 동학당 영수 강경중(姜敬重)·오지영(吳知泳)·고영숙(高永叔) 등 세 사람을 주모자로 몰아 사형을 선고하고 옥에 가두었는데 각지의 수천 명의 동학교도들이 이들을 구하기 위해 무장을 에워싸고 관아를 습격할 것이라며 위협하였다. 이러한 사태에 무장수령은 도망가고 죄수는 탈옥하였다. 이 일로 전라도 동학교도에 대한 탄압은 점차 심해지는데도 오히려 동학교도는 수가 점차 늘어갔다. 무장·고창·영광·흥덕·고부·부안·정읍·태인·전주·금구 등 각지에서는 이민(吏民)은 물론이고 동학에 들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892년 이 비결을 당시 고창에서 동학을 포교하던 손화중이 꺼냈다는 소문이 퍼지자 손화중의 접(接)에만 수만 명의 새로운 교도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고창 지방에서 손화중이 차지하고 있던 영향력과 관련하여 그에 대한 민중들의 신뢰를 말해 주는 것이며, 손화중포(孫化中包)에서 비결을 이용하려고 하였던 점은 추측해 볼 수는 있으나 동학농민혁명과 직접적인 관련 사실에 대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당시 이 일이 얼마나 민중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손화중포가 동학 교단의 최대 세력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다. 곧 손화중포는 고부봉기 후 동학 농민 혁명의 봉화를 올리는 데 주도적인 일을 한 부대로 선운사 마애불 비기 탈취사건은 손화중포의 조직과 이상에 힘을 실어 준 것이다. 곧 고창 지방에서 손화중이 차지하고 있었던 영향력과 관련하여 그에 대한 민중들의 신뢰를 잘 보여 준다. 선운사의 마애불 비결 설화는 당시 혼란한 시대적 정황이 마애불 안에 있는 비결로 민심들의 기원을 해결하고자 한 일단의 사건이었다. ▼ 11시37분 천마봉 정상에서 사자바위. 구미가 당기는데. ▼ 11시38분 천마봉 정상에서 .. * 도솔천의 비경이 한눈에 * ▼ 11시39분 천마봉 정사에서 가야할 능선 ▼ 11시42분 천마봉에서 빽하여 낙조대로 되돌아간다. ▼ 11시43분 천마봉에서 낙조대 가는길, 가야할 병풍바위가 펼쳐지고 하늘은 언제 함박눈이 왔느야 한다. ▼ 11시53분 병풍바위에서 지나온 천마봉과 멀리 경수산 어제 산행한 소요산. ▼ 11시53분 병풍바위에서 지나온 낙조대 뒷태. ▼ 12시03분 가야할 능선 배맨바위에서 청룡산으로 이어진다. ▼ 12시02분 살짝 당겨본 배맨바위. ▼ 12시14분 조망하는 방향에 달라져 보이는 배맨바위 좌측으로 휘돌아서 12시20분 배맨바위 이정표 앞에 선다. ▼ 12시23분 배맨바위을 뒤로하면서 찰깍 찰깍. ▼ 12시23분 청룡산이 크게 닥아온다. ▼ 12시32분 청룡산 정상을 가까이 하면서 뒤돌아본 풍경 ▼ 12시34분 삼각점이있은 청룡산 정상에 도착하여 주변풍경을 두러본후 능선길 이어간다. ▼ 12시40분 청룡산에서 벗어나 능선길 좌측으로 지나온 산하가 벌써 그리워지면서 20분후 쥐바위봉에서 점심밥 묵꼬 국기봉. 희어재. 비학산으로 이어가버리고 14시29분 광대산 구암 삼천굴갈림길을 만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무소”는 코뿔소를 뜻하는 말. 코뿔소는 무리를 짓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습성이 있는데 고대의 수도승들도 걸식을 하면서 홀로 수행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깨달음의 길은 혼자서 가는 길이기에 무소의 뿔이 한곳을 향하듯이 혼자서 가라고 한 것입니다. 如獅子聲不驚 사자처럼 소리에 놀라지 말고 如風不繫於網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말고 如蓮花不染塵 연꽃처럼 진흙에 물들지 말고 如犀角獨步行 무소의 뿔처럼 혼자 걸어가라 - <수타니파타(Sutta_nipāta)> 중에서.. ▼ 14시29분 능선길 우측으로 광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빠져 나간다. 구황봉은 여기서 1시간10여분 더가야 만난다. ▼ 14시47분 암릉길 우측으로 번암리 풍경을 접한다. ▼ 14시48분 병바위. 멋진터에 멋진바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함 가야봐야 할 텐데.. ▼ 14시55분 능선길. 병풍바위로 이어가는데 여기가 어딘지 ? ▼ 15시00분 병풍바위와 그 일행 ▼ 15시01분 병풍바위에서 .. 靑山은 나를보고 靑山見我 無語居 蒼空視吾 無垢生 愛慾離奪 憎亦棄 水如風居 歸天命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업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15시03분 병풍바위 지나서 만나는 안장바위 ▼ 15시20분 구황봉으로 오르는 능선안부 ▼ 15시31분 능선갈림길. 우측으로 능선이 하나 빠져나간다. 탄건암 구암으로 이어지면서 도로 건너면 병바위가 지척이다. ▼ 15시41분 구황봉 정상이다 무덤의 돌담을 넘어서면, ▼ 15시42분 구황봉 정상에 도착한다. 이어서 노적봉까지는 20여분이면 닿은다. ▼ 16시02분 노적봉 정상에서 형제봉은 10분이 좀더 걸린다. ▼ 16시15분 형제봉 정상에서 20여분 능선길 이어가다 오계봉 안부에서 좌측으로 하산하면서 산행이 막바지에 접어든다. ▼ 16시35분 능선안부에서 좌측으로 10여분 내려가면 '삼인종합학습원'에 당도한다. ▼ 16시47분 삼인종합학습원에서 상가지구를 지나 ▼ 16시55분 삼인리 전원민박에서 산행거리 21.7km 10시간25분 원점회귀 산행을 종료하고 숙박. 내일 아침 변산 옥녀봉 용각산 새봉 화양골 산행을 위해 바드재로 떠난다. ☆백원짜리 물고기요리를 먹느니 보다 백만원짜리 곰의 웅장을 먹겠다. - 노산 이은상 선생; 1903~1982. 시인. 문학박사. 경남 마산 출생 - ▼ 고창 선운산 종주 안내도 ▼ 고창 선운산 선운사 도솔암 지도 ▼ 고창 선운산 지도 ▼ 고창 선운산 지도 ▼ 고창 선운산 지도 ▼ 고창 선운산 대형지도 ▼ 고창 선운산 칼라대형지도 ▼ 고창 선운산 5만 지도 7. 차량이동(올 때); 8. 경비; ♧전원민박 숙박료 25,000원 9. 특기사항 ※ 전원민박에서 샤워 후 햇반으로 저녁식사 후 내일 부안 변산 산행기점 바드재 출발 예정으로 숙박한다. 10. 작성일자; 2011년3월22일(화)23시05분 자택에서............. 11. 작성자; *********************426-11-12******************* 도시속의 野人 海廣 2011-03-16 고창 선운산(경수산~청룡산~형제봉) 종주 21.7km.gpx
도솔암 남쪽 천길 바위 위에 우뚝 솟은 봉우리이다. 기상이 준엄하여 장군봉이라고도 한다.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도솔천의 비경이 발아래 내려다보인다. 인접한 낙조대와 함께 가장 많이 오르는 관광명소이다. 선운산 천마봉은 선운사 사찰 서쪽3.6km 지점에 위치한 해발 336m로서 정상에 올라서면 주위의 풍광에 감탄하게 하는 산이다.
*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기도한 기도처 *
매표소를 지나 들어서면 선운사 사찰이다. 절을 둘러보고 절 뒤 편 동백나무 숲에 동백꽃을 지나 남서쪽으로 20여분 가면 삼거리 휴게소가 나온다. 휴게소 건너편 도로로 계속 1km 올라가면 큰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장사송이라고 한다. 장사송 바로 옆에는 진흥왕이 불교에 심취하여 왕위를 버리고 도솔왕비, 중애공주와 더불어 선운사로 와서 기도를 했다는 천연 바위굴인 진흥굴이 있다. 이곳에서 10여분이면 도솔암이 나온다. 그 앞에 하늘을 가리고 있는 천마봉 모습이 보인다. 하산 길은 반드시 낙조대을 거쳐 100m아래 용문굴 속을 빠져 나올 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용문굴을 보고 계곡을 따라 곧장 내려서면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이 나오고 돌아서면 도솔암이다. 천마봉 산행은 매표소에서 출발 천마봉에 올라 낙조대와 용문굴, 마애불을 거쳐 주차장까지 돌아오는 데는 3시간이 소요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