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마이산 광대봉 탑사
진안 마이산(馬耳山) 광대봉 탑사
일자; 2012년 4월 23일(월) 날씨; 구름조금
1. 산명; 광대봉△609m~마이산(馬耳山)△686m~탑사
2. 위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인공수정소 앞
3. 인원; 월요산우회 43명
4. 차량이동(갈 때);
♤08:00 도시철도 동래역<산악회관광버스>→만덕터널→08:58 북부산T.G→남해고속도로
→진주J.C→통영대전고속도로→육십령터널→장수J.C→장수익산고속도로→11:13 진안T.G→
11:20 마이산북부주차장(잘못진입)→11:40 강정리 등산안내도 도착
♤차량이동시간; 3시간40분
▼ 진안 마이산 광대봉 탑사 트랙지도
5. 산행코스;
♤11:40 강정리등산로안내판(인공수정소 앞)→11:50 합미산성(合米山城)→11:59 안부→12:23 ×495봉→12:40 태자굴갈림길→12:46 광대봉△609m(삼각점)→12:56 보흥사갈림길→13:05 능선(점심15분)→13:50 탕금봉(528m)우회→14:00 삼각점×524.5봉→14:23 금당사갈림길→14:40 비룡대△527m(나봉암.팔각정)→14:59 깃대봉(호남정맥)갈림길→15:05 봉두암△548m(제2쉼터.10분)→15:36 안부→15:45 卍탑사(塔寺.15분) 빽→(마이산.馬耳山△686m출입금지)→16:13 탑영제→16:17 卍금당사(金塘寺)→16:20 마이산남부주차장 도착
♤산행시간; 4시간40분
♤산행거리; 11.6km(도상거리)
6. 트랙 2012-04-23 진안 마이산 광대봉 탑사(11.6km).gpx
▼ 진안 마이산 광대봉 탑사 산행지도
▼ 진안 마이산 10만 지도
마이산(馬耳山)
전설에 따르면 마이산에는 한 쌍의 두 신선이 자식을 낳고 살아가던 중 승천할 때가 이르러 남신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승천하는 장면을 보면 부정을 타서 안 되니 한방 중에 떠나자.” 하였으나, 여신은 밤에 떠나기는 무서우니 새벽에 떠나자고 하였다. 그래서 새벽에 떠나기로 하였는데 때마침 아침 일찍 물을 뜨러 온 동네 아낙이 승천하려는 장면을 보고 “어머나 산이 하늘로 올라가네!” 하고 소리치자, 승천이 틀린 것을 안 남신이 화가 나서 “여편네 말을 듣다가 이 꼴이 되었다.”하고 여신으로부터 두 자식을 빼앗아 그 자리에서 바위산으로 주저앉았다. 그래서 진안읍에서 마이산을 보면 아빠봉은 새끼봉이 두 개가 붙어 있고, 서쪽 엄마봉은 죄스러운 마음에 반대편으로 고개를 떨군 모습이라고 한다.
두 봉우리의 모양이 말의 귀처럼 생겼다 하여 마이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봉우리 두 개가 높이 솟아 있기 때문에 용출봉(湧出峰)이라 하였고, 동쪽을 아버지, 서쪽을 어머니라 하였으며, 신라 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이라 불렀다. 이성계는 속금산이라 불렀으며, 조선 시대 태종이 남행(南幸)하여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지금은 속칭으로 동쪽을 수마이산, 서쪽을 암마이산이라고 한다.
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른데, 봄에는 안개 속에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 사이에서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 귀처럼 보인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文筆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 11시40분 강정리 등산로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합미산성을 거쳐 광대봉까지 1시간이 더 걸린다.
▼ 11시41분 강정리 마이산 광대봉 등산로입구
▼ 11시44분 무덤 앞 이정표
▼ 11시51분 합미산성 초입이다.
※ 합미산성(合米山城)은 마이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 능선을 따라 축성된 포곡식의 석성이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이며, 둘레는 611m이다. 성벽은 지대가 낮은 서쪽은 편축, 나머지 쪽은 협축하였으며 높이는 약 4~5m이다. 합미산성은 동서, 남북의 사통 팔달한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진안현조에 본래 마령은 백제 마돌현이 있었던 곳이라 하였다. 따라서 합미산성은 백제 마돌현의 치소성의 배후 산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합미산성의 축성 연대는 백제 시대로 추정되고 있다. 축성법에서도 다듬은 성돌을 ‘品’ 자형으로 쌓고 있는 점은 고대 산성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통일 신라~고려 시대로 보이는 토기편들도 확인되고 있는 점은 백제 이후에도 산성이 경영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합미산성의 성곽 시설 중 성문은 북쪽과 남쪽, 동쪽 등 3개소가 추정되고 있다. 서벽 중앙의 대지에는 우물 터가 있다. 성 내부의 동남부는 가장 높은 곳으로 평탄한 대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지대가 낮은 서벽 중앙에도 대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 대지에서는 호형 토기·삼족 토기·개배 편 등의 토기류와 내면에 승석흔이 있는 기와 편 등의 삼국 시대 백제 유물 등이 확인된 바 있다. 지금은 산림이 우거져 성 내부 현황은 잘 살펴볼 수 없으나 외형적으로 산 정상부와 능선을 감싸고 있는 포곡식의 산성 형태가 관찰된다.
합미산성이 자리하고 있는 백제 때 마돌현이 자리했었던 곳이며, 섬진강과 그 지류들이 합류되는 지점에 위치한다. 또한 합미산성의 취약 지역에는 자성인 강정리 산성을 축조하여 주변의 감시망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마돌현의 치소 지로 추정되는 평지리 산성이 은천천 남쪽 낮은 산에 자리하고 있어 현치소의 피난 성이자 배후 산성, 그리고 수로를 이용한 교통로의 감시 기능을 도맡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 11시56분 합미산성을 지나 10여분후 495봉에 당도한다.
청노루
박목월
머언 산(山)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
청(靑)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 12시26분 가야할 능선. 광대봉이 우뚝하게 솟았다.
▼ 12시40분 능선기 우측으로 태자굴갈림길 1.1km
▼ 12시42분 광대봉에서 올라서면서 지나온능선
▼ 12시46분 광대봉 정상을 올라탄다. 조망이 좋고 비룡대까지는 2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 12시47분 광대봉 정상에서 가야할 능선
▼ 13시00분 능선기 지나온 광대봉
▼ 13시00분 가야할 능선 탕금봉 425.4봉과 비룡대.
▼ 13시05분 능선 쉼터에서 점심밥 먹고 산행길 이어간다.
▼ 13시23분 이놈의 덩치큰 방구봉을 우측에 두고 능선길 이어지는데, 지도을 살펴봐도 이름이 없다.
▼ 13시27분 가야할 능선, 날씨가 지금 볻가 쪼개만 더 밝아져도 ㅋ
▼ 13시36분 가야할 능선, 15분후 탕금봉은 우측으로 우회하는 길이 열린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무소”는 코뿔소를 뜻하는 말. 코뿔소는 무리를 짓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습성이 있는데 고대의 수도승들도 걸식을 하면서 홀로 수행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처럼 깨달음의 길은 혼자서 가는 길이기에 무소의 뿔이 한곳을 향하듯이 혼자서 가라고 한 것이다.
如獅子聲不驚 사자처럼 소리에 놀라지 말고
如風不繫於網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말고
如蓮花不染塵 연꽃처럼 진흙에 물들지 말고
如犀角獨步行 무소의 뿔처럼 혼자 걸어가라
- <수타니파타(Sutta_nipāta)> 중에서..
▼ 14시01분 삼각점 524.5봉에서 이어지는 능선은 우측으로 획 휘어져 이어간다.
▼ 14시09분 저걸우찌나 10여년전 예전에 헬기장에 올랐을때 가운데 파손된 봉두암 표석을 보았은데. 좌측 봉두암이라 생각해서 그런가 했은데.. 높이는 좌측(제2쉼터)이 548이고 우측 부셔진 봉두암표석이있었던 곳은 540이다.
▼ 14시17분 우측으로 남부주차장갈림길이다. 600미터이고 20여분이면 비룡대(나봉암)에 올라선다.
▼ 14시25분 나봉암(비룡대)과 나옹굴이 잘조화을 이루어야 할텐데.
▼ 14시32분 비룡대가 가까워지면서 마이산이 실루엣으로 닥아오는데, 마이산 앞에 보초을 서고있은 두 암봉
▼ 14시35분 비룡대에서 남부주차장과 금당사.
▼ 14시35분 비룡대(팔각정) 나봉암 527m에서 조망이 기가찬다.
※ 비룡대에 올라서면 정면에 수마이봉이 암마이봉 왼쪽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뒤로는 금빛의 고금당과 화려한 색상의 관광버스가 늘어선 남부주차장이 보인다. 내려서는 구간은 급경사 암릉이다.
금당사 갈림길에서 탑사(2.0㎞) 쪽으로 직진한 뒤 삼거리에서 왼쪽 내리막을 택한다. 그다음 삼거리에서는 직진해도 되지만 두꺼비 바위를 보기 위해 오른쪽으로 간다. 또다시 삼거리가 나오면 봉두봉 쪽으로 직진한다. 오른쪽 길은 부부시비와 탑영제(0.8㎞)로 가는 길이다. 짧은 된비알을 지나 북부주차장 갈림길에서 봉두봉 쪽으로 직진한다. 100m가량 나아가면 오른쪽 나무 사이로 거대한 코끼리 바위가 비룡대를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제2쉼터(548m)를 지나 약 50m 내려가면 오른쪽 나무 사이로 암마이봉이 오롯이 보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곧 조그만 정상석이 길 가운데 박힌 봉두봉(540m)을 만난다.
내리막길을 약 5분간 걸으면 탑사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 탑사(300m)로 가지 말고 직진해 암마이봉으로 간다. 된비알을 오르다 암마이봉 허리를 끼고 왼쪽으로 내리막길을 걷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만난다. 나뭇가지가 절벽을 받친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철제 계단을 한참 오르면 초소와 벤치가 있는 암마이봉 입구다. 암마이봉 정상까지 된비알을 450m가량 올라야 한다. 포기자가 속출한다. 가능하면 배낭과 스틱 없이 오르는 편이 낫다. 사람의 물결에 휩싸여 하염없이 올라간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즈음 왼쪽에 수마이봉을 볼 수 있는 덱 전망대가 나타난다. 수마이봉 중턱에 화엄굴이 조그맣게 보인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오르면 암마이봉 정상이다. 독특한 글씨체의 정상석이 있지만 인증샷 대기자가 많아 그냥 지나친다.
정상을 살짝 지나면 탑영제가 내려다보이는 덱 전망대가 있다. 입구로 되돌아 나와 오른쪽 천왕문으로 내려선다. 직진하면 통제된 수마이봉이 있고 왼쪽 길은 북부주차장과 이어진다. 취재팀은 은수사가 있는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은수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줄사철나무와 청실배나무가 있다. 청실배나무는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약 300m를 더 내려가면 80여 기의 돌탑군이 모여 있는 탑사에 이어 탑영제를 만난다. 이번 주말께 벚꽃이 절정을 이루면 멋진 경관이 펼쳐질 전망이다. 이어 보물 제1266호인 괘불탱을 간직한 금당사가 나온다. 금당사 일주문을 지나 남부주차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 14시40분 나봉암 표석
▼ 14시40분 비룡대에서 바라본 암수 마이봉은 실루엣으로만 다가왔지만 가까이 갈수록 압도적인 실체로 턱하니 서 있다. 호수 밑에서 퇴적된 모래와 자갈이 뭉쳐져 이렇게도 도도하게 서 있다니…. 이제 봉두암으로 이어진다. 25분후 봉두암(제2쉼터)에 이른다.
靑山은 나를보고
靑山見我 無語居
蒼空視吾 無垢生
愛慾離奪 憎亦棄
水如風居 歸天命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업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15시05분 봉두암(제2쉼터)에서 지나온 능선
▼ 15시05분 봉두암(제2쉼터)에서 지나온능선, 가야할 탑영저수지와 남부주차장
▼ 추억의 포토 16년전
▼ 15시06분 봉두암(제2쉼터)
※ 마이산(馬耳山)은 두 개의 큰 산봉우리로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봉우리 두 개가 높이 솟아 있기 때문에 용출봉(湧出峰)이라 하였고 동쪽을 아버지, 서쪽을 어머니라 하였으며, 신라 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이라 불렀으나 조선 시대 태종이 남행(南幸)하여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지금은 속칭으로 동쪽을 수마이산(680m), 서쪽을 암마이산(687.4m)이라고도 한다.
이 산 일대의 자연경관과 사찰들을 중심으로 1979년 10월전라북도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깎아지른 듯한 수마이봉 기슭의 숲속에 은수사(銀水寺)라는 절이 있고 그 밑에 또 다른 명물인 탑사(塔舍)가 있다. 또한 2003년 10월에 산태극·수태극의 중심지로서 국가지정 명승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약 100여 년 전 이갑용(李甲用)이 쌓아올린 80여 기의 돌탑인 마이산탑(전라북도 지방기념물 제35호)으로 이루어졌는데, 불규칙한 자연석을 모아 원추형 혹은 기둥 모양으로 쌓은 것이다. 그 남쪽에 있는 신라 시대의 고찰 금당사(金塘寺)에는 은행나무에 조각된 금당사목불좌상(金塘寺木佛坐像,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호)과 14위의 관음보살상을 그린 9m 길이의 금당사괘불탱(金塘寺掛佛幀, 보물 제1266호), 금당사석탑(金塘寺石塔, 전라북도 지방문화재자료 제122호)이 소장되어 있다.
이산묘(駬山廟)는 이성계(李成桂)가 등극 전에 임실의 성수산에서 100일 기도 후 내려와 마이산에 들어설 때 말을 매어놓았던 자리로, 단군성조와 태조·세종·고종의 위패를 모신 회덕전(懷德殿), 조선 시대 명신·거유를 모신 영모사(永慕祠), 한말의 지사(志士)와 의병장 33위를 모신 영광사(永光祠)로 이루어졌다.
그 외에 은수사에는 이태조가 심었다고 전하는 진안마이산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386호)와 진안마이산줄사철나무군락(천연기념물 제380호) 등이 있다.
▼ 추억의 포토 16년전 헬기장 540봉
▼ 추억의 포토 16년전 헬기장 540봉에서
▼ 15시17분 갈림길에서 ..
※ 진안 마이산(馬耳山)을 바라보자면 절로 감탄이 흘러나온다. 산 전체가 바위인데 말의 귀처럼 쫑긋하게 솟은 거대한 두 암봉이 마주보고 있는 모양새다. 암마이봉(686m), 수마이봉(680m). 1억 년 전 호수에 쓸려온 모래와 자갈이 눌렸다가 솟구쳐 지금의 부부 암봉이 됐다. "시멘트와 자갈을 버무려 놓았나?" 이런 착각을 일으키는 거대한 수성암이 무너지지 않고 고고하게 서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또 그 겉면에는 벌집 모양의 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마치 포격을 당한 것처럼 보인다. 타포니(taffoni·풍화혈) 현상이다. 세계적으로 진귀한 지질 현장이다.
풍수적으로는 기가 센 곳으로 손꼽힌다.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이 이어지는 산태극이자, 섬진강과 금강이 갈라지는 수태극이다. 이런 기운 때문인지 마이산은 이성계가 개국의 금척(金尺)을 받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마이산은 하늘에서 임금이 된다는 소리를 귀로 들은 산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높으신 분'들의 발걸음이 꾸준한 까닭이기도 하다.
▼ 15시36분 안부에서 암마이봉을 좌측으로 돌아가는길과 암마이봉 출입금지. ㅋ 16년만에 다시 오르고자 한 마이산 정상을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면서 탑사로 발길을 돌린다.
▼ 15시37분 안부이정표에서 우측 탑사로 발길을 옮긴다.
▼ 15시45분 탑사에 당도한다. ~~~
※ 탑사(塔寺)는 전라북도 진안군 마이산(馬耳山)에 있다. 마이산이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조선 태종 때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태종이 남행(南行)하여 이 산 아래를 지나다가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란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마이산 동쪽 봉우리를 수마이봉(667m), 서쪽 봉우리를 암마이봉(673m)이라 부른다. 탑사는 암마이봉의 수직 벽이 올려다보이는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탑사를 건립한 이는 처사 이갑룡(1860~1957)인데 그는 크고 작은 돌을 쌓는 방식으로 생전에 108기의 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80여 기에 달하는 탑이 남아있다. 이갑룡의 본명은 이경의(李敬議 )이며 자는 갑룡(甲龍), 호는 석정(石亭)이다. 전주이씨 효령대군의 16대손으로 1860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백수(白壽)를 누리고 1957년에 마이산 기슭에 묻혔다. 본명보다 ‘이갑룡 처사’로 불리는 그는 생전의 숱한 일화들을 남겼는데 마이산 인근 사람들에겐 전설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스물다섯 살 되던 해에 유·불·선 삼교에 바탕을 둔 용화세계의 실현을 꿈꾸며 이곳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죄를 빌고 창생(蒼生)을 구할 목적으로 30년을 한결같이 낮에는 돌을 나르고 밤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탑을 쌓았다.
그렇게 해서 이룩된 탑이 108개인데 이른바 백팔번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염원이 그 안에 담겨 있다고 한다. 탑사의 탑은 자연석을 원뿔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외줄 탑을 올렸다. 탑은 단순한 형식이지만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함이 있다. 탑사의 돌탑들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탑사에는 대웅전과 영신각 등의 건물이 있으며 대한불교태고종에 소속되어 있다.
▼ 15시47분 탑사
▼ 15시49분 탑사에서 이갑룡 처사 존영
▼ 15시50분 탑사에서 사칠나무와 섬진강 발원지 용궁
▼ 15시54분 탑사 뒤편 천지탑
※ 천지탑은 부부탑으로 2기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13.5m이고 남.북으로 축조되어 있다. 주탑인 천지탑을 정점으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줄줄이 세워져 있고 팔진법의 배열에 의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며, 당초에는 120기 정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80여기가 남아있다. 맨 앞 양쪽에 있는 탑을 일광탑.월광탑이라 하며 마이산 탑군은 태풍에 흔들리기는 하나 무너지지 않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탑들을 보면 양쪽으로 약간 기울게 쌓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조탑자가 바람의 방향 등을 고려하여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 15시55분 천지탑은 이갑룡 처사가 3년간 고생 끝에 ..
▼ 15시58분 탑사
▼ 15시59분 탑사이정표에서 은수사은 300미터 가야하는데 포기하고 추억의 포토로 대처하고 남부주차장으로 이어간다.
▼ 16시00분 탑사여 안영 !
▼ 16년전 추억의 포토 은수사에서 바라본 숫마이봉 직벽은 사람의 얼굴 모습이다.
▼ 추억의 포토 16년전 은수사에서 ..
▼ 16시14분 탑영저수지에 당도하여 지나온 마이산을 살펴본다.
▼ 추억의 포토 탑영저수지에서 16년전 추억을 떠올린다.
▼ 16시17분 금당사에 도착하니 지붕을 금칠로 했네. 예전의 모습은 좀 초라했던 기억인데 사찰 건물이 많이 건축된 것 같다.
※ 금당사(金堂寺)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650년(의자왕 10) 고구려에서 백제로 건너온 보덕(普德)의 11제자 중 한 사람인 무상(無上)이 그의 제자인 금취(金趣)와 함께 세웠다고 한다. 당시 위치는 지금보다 약 1.5㎞ 떨어진 곳이었으며, 그래서 예전 자리를 고금당(古金塘), 혹은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삼았으므로 혈암사(穴巖寺) 또는 금동사(金洞寺)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은 1675년(숙종 1)의 일이다. 다른 하나의 창건설은 814년(헌덕왕 6) 중국승 혜감(慧鑑)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한때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고 여러 차례의 중건 및 중수를 거쳤는데, 한때 고려의 고승 혜근(惠勤, 1320∼1376)도 이곳에 머물며 수도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쇠락하였으나 167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창하였다. 그 뒤 1978년에는 명부전, 1987년에는 산신각, 1990년에는 극락전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지장전·삼성각·대방(大房) 등이 있다.
대웅전은 약 300여 년 전에 건립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나한전에 봉안된 6척의 목불좌상(木佛坐像)은 동구나무로 만든 것으로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어 있고, 너비 5m, 길이 9m의 괘불(掛佛)은 보물 제126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밖에도 대웅전 앞에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탑 1기가 있는데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절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마이탑사(馬耳塔寺)와 단군을 받드는 이산묘(이山廟)가 있다.
▼ 16시20분 마이산남부주차장에서 산행거리 11.6km 4시간40분 산행을 종료하고, 1시간후 산악회은 남부주차장을 출발하여 18시05분 산청 생초 경호강변남원식당에서 저녁묵꼬 부산으로 향한다.
☆백원짜리 물고기요리를 먹느니 보다 백만원짜리 곰의 웅장을 먹겠다.
- 노산 이은상 선생; 1903~1982. 시인. 문학박사. 경남 마산 출생 -
▼ 진안 마이산 북부주차장 지도
▼ 진안 마이산 지도
▼ 진안 마이산 지도
▼ 진안 마이산 지도
▼ 진안 마이산 지도
▼ 진안 마이산 지도
▼ 진안 마이산 지도
▼ 진안 마이산 광대봉 지도
▼ 진안 마이산 광대봉 지도
▼ 진안 마이산 광대봉 지도
▼ 진안군 행정 지도
7. 차량이동(올 때); 저녁식사40분
♤17:20 마이산남부주차장→진안T.G→장수익산고속도로→장수J.C→통영대전고속도로→육십령터널→18:05 산청 생초 경호강변(남원식당.저녁식사40분)→진주J.C→남해고속도로→20:34 북부산T.G→만덕터널→20:50 동래 광혜병원 앞 도착
♤차량이동시간; 3시간30분
8. 경비;
♧회비 30,000원
9. 특기사항
10. 작성일자; 2012년4월24일(화) 08시10분 자택에서.........
11. 작성자; *********************859-12-35******************* 도시속의 野人 海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