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록1 (2010년~2019년)/전라남도 광주

광양 벽계산 제비추리봉 옥룡사지 중흥사

靑谷 2012. 3. 20. 21:27

광양 백계산(白鷄山) 제비추리봉 옥룡사지(玉龍寺址) 중흥사(中興寺)

일자; 2012320() 날씨; 맑음

 

1. 산명; 백계산(白鷄山)505.8m~제비추리봉593.2m 옥룡사지(玉龍寺址)~중흥사(中興寺)

2. 위치;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운암사

3. 인원; 묏바람가는길 30여명

 

4. 차량이동(갈 때);

08:00 도시철도 동래역<산악회관광버스>만덕터널08:44 북부산T.G남해고속도로섬진강교광양읍10:30 광양T.G광양 옥룡10:45 운암사주차장 도착

차량이동시간; 2시간45

 

▼ 광양 백계산 제비추리봉 옥룡사지 중흥사 트랙지도



5. 산행코스;

10:50 운암사주차장운암사10:58 옥룡사지(玉龍寺址) 동백림11:36 능선삼거리11:42 백계산(白鷄山)505.8m(삼각점) 12:05 금목재(임도)12:27 도솔봉갈림길×73812:45 제비추리봉593.2m(점심15)13:03 송전탑13:13 갈림길(우측)13:25 도치재13:43 ×517.2(삼각점.통신탑)14:01 포장도로14:13 ×390안부14:33 중흥산성 안내문(임도10)좌 내리막길14:55 중흥사(中興寺)15:16 상운마을표석15:20 옥룡면사무소 도착

산행시간; 4시간30

산행거리; 16.5km(도상거리)

 

6. 트랙 2012-03-20 광양 백계산 제비추리봉 중흥사(루트15.0km).gpx

            광양 백계산 제비추리봉(10.3km)20160331.gpx




▼ 광양 백계산 제비추리봉 옥룡사지 중흥사 산행지도 / 5만



▼ 광양 백계산 제비추리봉 옥룡사지 중흥사 10만 지도





 

광양 옥룡사지(光陽 玉龍寺址)

옥룡사지는 선각국사 도선이 35년간(864~898) 머물면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입적한 곳으로 절을 세울 때 땅의 기운이 약한 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동백나무 숲을 조성했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수령은 100년 이상, 높이 6~10m, 근원 둘레 50cm3월말경이면 동백꽃이 만개하여 찾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며, 동백나무 숲 사이 오솔길은 힐링하기 좋은 장소이다현재 7천여본의 동백나무가 사찰지 주변에 군락을 이루고 있어 경관적, 학술적으로 보존할 만한 가치가 높으며, 보호관리 되고 있다.

 

옥룡사지는 옥룡면 추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옥룡"이라는 지명은 도선의 도호인 "옥룡자"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온다. 옥룡사지를 싸안고 있는 백계산(505.8m)은 주산인 백운산(1,222m)에서 뻗어 내린 지맥으로 형성된 아담한 산으로 백운산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절터는 큰 연못이었는데 이 연못에 9마리의 용이 살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한다. 이에 도선국사가 용을 몰아냈는데 유독 백룡만이 말을 듣지 않자, 지팡이로 용의 눈을 멀게 하고 연못의 물을 끓게 하여 쫓아낸 뒤 숯으로 절터를 닦아 세웠다고 한다.




▼ 10시50분 추산리 운암사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백계산 정상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운암사지는 옥룡사의 쌍비가 있었던 비석거리 아래 동백림이 끝나고 바로 논이 시작되는 자리이다. 창건에 대한 기록은 없고 옥룡사 도선국사비의 음기에 당시 주지였던 志文스님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150년 경에 운암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1993년부터 그 자리에 종견스님이 운암사을 지어 거주하고 있다.




▼ 10시50분 운암사 대불



운암사는 불사가 한창인지 절 마당이 채 다듬어지지 않았다. 청동대불이 단연 눈에 띄었는데 입상의 높이가 무려 30m라고 했다. 비단잉어가 유유히 헤엄치는 불상 앞 연못을 지나 절집 마당을 한 계단 더 올라서니 옛 절집의 풍모가 나온다

산행로는 대웅전 왼편으로 난 동백숲에 있다. 동백숲은 신라 말기 도선 국사가 절을 창건하면서 심은 것으로 전해온다. 풍수에 밝은 도선 국사가 옥룡사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 차나무와 함께 가꾼 것이라고 한다

옥룡사지는 몇 개의 주춧돌로 남았다. 아홉 마리 용을 몰아내고 연못을 메워 절을 세웠다는 옥룡사지 주변은 동백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다. 폐사지에서 아득한 옛날 도선 국사의 설법을 듣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민중을 떠올린다. 왕조의 끝자락 피폐한 삶이 힘들었을 때 붉은 동백꽃이라도 보고 갔으면 위안은 되었으리라

백계산에 다시 오른다. 전형적인 육산이라 발걸음이 부드럽다. 산꾼들이 '물소 뿔 소나무'라고 부르는 독특한 소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큰 뿔이 땅에서 불쑥 솟아난 것 같다.

눈밝이샘 이정표가 있어 옆길로 새서 한껏 여유를 부렸다. 눈이 밝아진다는데 안 먹을 재간이 있나. 등로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샘의 형상이 기묘했다. 물 한 바가지 가득 떠서 마시고 다시 돌아 나온다. 느긋하게 걸으니 힘들지도 않다. 백계산으로 가는 길도 결국 되돌아 나와야 하지만 가볍게 걷는다. 백계산에서 개현마을로 내려가는 하산로도 있는데 가볍게 산행 코스를 잡으면 이 길을 택하면 된다




▼ 10시56분 운암사에서 동백숲을 거쳐 옥룡사지로 들어간다.



▼ 10시58분 옥룡사지를 답사한다.



▼ 10시9분 옥룡사지 한귀퉁에있은 이굴은 농부가 감자을 저장하기위해 만든 감자굴인데, 명승지에 찾아오는 관광객의 눈길을 끌어 당긴다.



▼ 11시00분 옥룡사지 답사후 다시 고개로 올라가서 능선을 타고 백계산으로 이어간다.  


광양 옥룡사의 연기설화

신라말에 도선이 상 백운암에서 종이로 학을 접어 날렸더니 백계산의 큰 못에 떨어졌다. 그 못에는 청룡과 백룡이 살고 있었다. 도선이 이번에는 활을 쏘자 청룡은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백룡만 남아 버티다가 거듭 쏜 화살에 눈을 맞고서야 승천하였다. 도선은 그곳에 옥룡사를 세우고 백씨 성을 가진 스님은 절대로 들이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 뒤에 성명부지의 한 중이 들어왔는데 절이 불이 나서 타버렸다. 그 중은 성이 백씨였고, 그 재난은 백룡이 꾸민 보복이었다는 이야기다.

 

옥룡사는 신라 말에 조그만 암자였던 것을 도선국사가 864년에 중수하여 거처하였으며, 수백 명의 사문들이 그의 법문을 듣고자 몰려들어 "옥룡사파"란 지파가 형성되자 몰려드는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인근에 운암사라는 사찰을 추가로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옥룡사는 몇 차례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사세를 이어오다가 1878년 화재로 소실된 후 폐사지가 되었으며, 또한 동년 비석거리에 있었던 도선비도 1915년경에 완전히 파괴되어 부근 농민들에 의해 탑비가 세탁석, 지석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1172년에 비석거리에 세워졌던 도선비는 옥룡사에 입비된 지 706년 만에 넘어지고 파괴되었으며, 통진비 또한 도선비가 파괴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없어져 버리고 비문만이 탁본되어 "동문선" 등에 전해온다.

 

옥룡사지 주변에는 도선국사가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는 것으로 전해 오는 동백나무 7천여본이 7ha에 거쳐 울창한 동백숲을 이루고 있는데 험난한 역사에 휘말려 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이 동백들만이 그 뿌리를 견고히 내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광양시는 옥룡사지 발굴·복원을 위하여 순천대학교박물관에 의뢰하여 옥룡사지 정밀 지표조사와 다섯 차례의 사지 발굴을 통해 도선국사와 통진대사의 부도탑과 비석자리를 확인하였고, 도선국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과 이 유골을 안장한 것으로 보이는 석관이 발견되어 당시 고승들의 장례 풍습을 알 수 있었으며, 이를 토대로 1998년 옥룡사지 일대는 사적 제407호로 지정되었다.

 

도선이 그들의 퇴거를 명하자 여덟 마리는 따랐으나 백룡만은 도술을 부리면서 대항하였다. 도선이 지팡이로 용의 왼쪽 눈을 멀게 하고 물을 끓게 하여 용을 쫓은 뒤 절터를 닦았다. 그러나 습지를 메우고 땅을 굳게 하는 일이 용이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변 마을에 갑자기 원인 모를 눈병이 유행하였는데, 풍문을 좇아 눈병 있는 사람들이 숯 한 섬씩을 가져다가 연못에 부으면 감쪽같이 눈병이 나았다. 이렇게 절터를 닦아 건물을 지은 뒤 부처님의 치아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이 때 도선은 승속을 막론하고 이름에 ()’자가 들어가는 사람을 이 절에 들이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300년 뒤에 백룡(白龍)이라는 거사가 이름을 속이고 들어와서 살다가 절을 불태웠으며, 그 뒤 방치되었다. 1967년에 혜성(慧性)이 중창하여 법왕사(法王寺)라 하였으며, 당우로는 인법당(因法堂)만이 있다.

 

원래 이 절에는 954(광종 5)에 세운 동진대사비(洞眞大師碑)1150(의종 4)에 세운 도선국사비가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으며, 원래의 절터에는 영모재(永慕齋)라고 하는 재실이 있고, 사찰주변에는 도선이 창건할 때 땅기운이 약한 것을 보하기 위해서 심은 동백나무의 번식목들이 있다.




▼ 11시33분 눈밝이샘갈림길이정표에서 눈밝이샘 다녀와서 능선삼거리로 올라가서 백계산 정상으로 이어간다.



▼ 11시42분 백계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빽하여 다시 능선삼거리로 되돌아가서 금목재로 올라가면 도솔봉능선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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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백계산(白鷄山)과 풍수지리(風水地理)


1.백계산(白鷄山)은 어떤 산 일까?

전남 해안에 있는 광양의 백계산(白鷄山)은 예로부터 지금의 백운산(白雲山 1,218m)을 통칭하던 이름이었으나 조선후기에 주산은 백운산으로, 백계산은 그 혈처인 추산(秋山)의 명칭으로 분리되고 바뀌었다.

오늘날 백계산은 (505.8m)은 주산인 백운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내린 지맥에서, 한 맥이 나와 동쪽으로 흘러, 백운산 남쪽 중앙부에 형성된 추산리 도선국사의 탑이 있는 산을 말하고 조선중기 이전의 기록은 주산인 백운산과 혈처인 운암사를 함께 통칭했었던 말이다.





▼ 광양현지도(1872)





▼ 동여비고(1682)



대표적으로 도선국사 비문에서 "백계산유고사왈옥룡(白鷄山有古寺曰玉龍)""백계산(백계산)에 옥룡 이라는 옛 절이 있다"는 기록에서 ,백계산은 주산인 옥룡산을 말하고 경보선사의 비문에서 "백계산동지운암강(白鷄山東之雲巖崗)" 즉 백계산을 동쪽 운암사 산 능선이라 한 것은, 백계의 혈처인 추산리 백계산을 말하는 것으로, 운암사 동쪽 산 능선에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다.

삼신산의 우두머리인 방장산(지리산)과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좌측에 있는 백운산은 그 자체가 "순천 서면(西面)""구례 간전면(墾田面)"에 두 발(鷄足山)을 딛고 ,동서(東西)로 날개를 펴고 ,북쪽을 향하여 날아오르는 닭의 형국이다.

백계산의 혈처라는 도선국사의 비가 서 있는 산은 보는 사람마다 이견이 있겠지만 날아오르는 닭의 등에 해당 하는 것으로, 즉 이러한 전체적인 풍수는 학()을 타고 승천하는 신선도(神仙圖)와 같은 의미이고, 혜철국사가 이 산을 크게 중용한 것은 북쪽의 한반도를 안정시키고 국가의 태평성대를 위한 포석을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백운산 모습



2.풍수지리로 본 백계산(白鷄山)

- 백계산에는 왜 물이 귀할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백계산(白鷄山)은 현의 북쪽 20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산 머리에 바위가 있고 바위 아래 샘이 있으며, 샘 밑에서 흰 구름이 때로 일어나는데, 소원을 빌기만 하면 문득 영험이 있고 몸과 마음이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한 일을 멀리 하지 않으면 샘물이 마른다"는 기록에서 보듯이,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을 알 수가 있으며, 또한 이곳은 백계(白鷄)라는 풍수로 보아도, 수맥이 있어서도 안되는 곳이다.

, ()는 물이 없어야 하고, ()은 물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계()와 용() 둘의 조건은 ,물이 있고 없음에 따라 생사(生死)가 갈리는 극과 극이다.

다시 말하면 백계(白鷄)의 혈처에 옥룡(玉龍)이 있는 것은 상극(相剋)이고 현무(玄武)의 혈처에 옥룡이(玉龍)이 있다는 것은 상생(相生)이니, 풍수로 보아도 백계의 혈에 옥룡이 있다는 것은, 합이 맞지 않는 잘못된 것으로, 자자손손 패가망신(敗家亡身)할 혈이다.





순천시 선암사 도선국사 영정



도선국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커다란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에 백룡(白龍)이 살고 있었는데, 숯으로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지었다는 전설에서 보듯이, 백룡(白龍)은 옥룡(玉龍)과 같은 "흰 용"으로 옥룡(玉龍)의 혈처에 지은 법당이라면, 그것이 연못이든 물구멍이든 당연히 수맥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추산이 백계산 옥룡사는 전설과는 거리가 먼 땅이다.

도선국사가 점지했다는 백계산 운암사라는 지명과 풍수를 보고, 세상 사람들은 이곳이 백계(白鷄)가 알을 품고 홰를 치는 명당이라는 등등....... 저마다 그럴 듯 한 이유를 들어 명당이라고 주장을 하는데, 이는 운암사의 존재가 무엇인지, 그 실체는 물론 풍수의 기본도 모르는 잘못된 해석이다.

()와 수()는 상극인데, 닭이 알을 품은 백계포란(白鷄抱卵)의 혈처에,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운암(雲巖), 즉 구름과 바위가 있고, 더구나 그 알을 훔쳐 먹고 사는 뱀 즉 용()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은, 패가망신하고 자손이 멸절(滅絶)될 뿐, 백해무익(百害無益)한 것임에도, 엉뚱한 전설이 이어져 온 것은, 부질없는 사람들의 허욕이, 도선국사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낸 망상일 뿐, 이곳에 운암사를 세운 도선국사의 마음은 분명 아니었다.

또 다른 전설에서, 도선국사가 절을 세울 때, 땅의 기운이 약한 것을 보충하려고 심었다는 주위의 동백나무숲 역시 이른바 풍수들이 밥을 빌기 위한 말장난이다.

세상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동백나무숲이 백계산 백계포란(白鷄抱卵)의 혈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면, 그곳에 구멍 즉 우물을 파는 순간, 흰 닭이 품고 있던 신령한 알은 깨어져버렸고, 다시 사람이 머물며 불을 지핀 것은, 곧 그 백계마저 죽여 태워버리는 사혈(死穴) 즉 사지(死地)가 되었고, 사람의 시신을 그곳에 묻는 것은, 신성(神聖)해야 할 신의 땅을 오염시키고, 포란을 부패시키는 일이므로, 아마도 도선국사 이후, 그곳을 살아서 들어가, 살아서 나온 이는 없었을 것이며, 오늘날까지도 그 터가 온전하게 보존되지 못하고, 끝없이 수난을 당하는 이유라 할 것이다.
 


- 백계산(白鷄山)과 풍수와의 모순

이러한 풍수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무엇이든, 백계의 혈에 우물을 파고, 구들을 만들어 불을 피우고, 시신을 묻고, 탑과 비를 세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절대 금기사항인데....... 임금의 명령으로 백계산에 비를 세운 경보선사는 말할 것이 없지만, 천하 풍수의 대가라는 도선국사가 자신이 살아생전에 신을 위해 마련한 신의 땅을, 죽어서 침범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유언으로 남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백계혈이 있다는 땅을 중심으로, 동서 골짜기에, 조성된 동백 숲을 가지고, 굳이 풍수를 논한다면, 그것은 닭의 깃을 아름답게 장엄하여, 장천(長天)을 날아가려는 신선사상(神仙思想) 즉 백계산 산신령을 위한 배려이다.





백계산 전경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풍수들이 백계산을 거론했지만, 도선국사 이후 "이곳에 옥녀탄금혈(玉女彈琴穴) 즉 선녀가 거문고를 연주하고, 옥녀배혈(玉女拜穴) 즉 선녀가 엎드려 절하는 명당이 있다."고 말했다는 당나라에서 온 양맥수란 사람만이, 겨우 담 너머로 도선국사의 뜰 마당을 보고, 자신의 이름값을 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백계산 운암사(현 추산리 옥룡사)는 도선국사가 국가의 안녕을 도모하기 위한 비보(裨補)로써, 백계산 산신령을 위해 마련한 자리이고, 인간들의 탐욕이 만든, 백계포란(白鷄抱卵)의 혈처라는 전설로 보아도, 사람들이 머물러 살거나, 시신을 묻어서는 안 되는 지세(地勢)이므로. 사람의 거처를 위한 구들을 없애고, 우물도 메우고, 냄새나는 사람의 시체까지 들어내어, 처음 그대로 솔바람 물결소리 향기로운 청정한 도량을 만들어, 백계산 주인이신 산신령님께 돌려드리고, 국태민안을 비는 것이, 당장의 국리민복을 위하고, 다시 천년의 사직을 비보하는 역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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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시05분 금목재에서 능선을 타고 30분 정도 오르면 삼거리에 이른다.



▼ 12시25분 능선 오름길 뒤돌아보면 광양 백운산과 억불봉이 조망되고 중앙으로 지나온 백계산이다.



▼ 12시25분 백계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



▼ 12시27분 도솔봉갈림길이다. 곧장 오르면 도솔봉으로 이어지고 제비추리봉은 좌측으로 능선을 바꿔 탄다. 20분이면 충분하게 제비추리봉에 당도한다.



▼ 12시44분 제비추리봉 정상에서 지나온 도솔봉갈림길 733봉과 그뒤 도솔봉과 우측으로 백운산이 자리한다.



▼ 12시45분 제비추리봉 정상이다.



▼ 12시45분 제비추리봉 정상에서 남릉을 타고 중흥산성으로 이어간다.



▼ 13시14분 능선길 억불봉과 백계산 풍경



▼ 13시41분 능선길 백운산과 그 휘하에 거느리고있은 봉우리 들.



▼ 13시41분 백운산 정상에서 흘러내린 능선에서 억불봉과 배계산 풍경



▼ 13시43분 삼각점이있은 517.2봉에 올라선다.



▼ 13시43분 517.2봉 삼각점



▼ 14시01분 포장도로를 만나 잠시 따르다 농장 울타리를 넘어 능선으로 들어간다.



▼ 14시40분 임도에서 중흥산성 안내문이 오래되어 읽을수가 없다.



▼ 14시55분 증흥사 뒷편에 설치된 중흥산성 안내문


광양 중흥산성 중흥사(中興寺)

광양시 옥룡면에 있는 중흥산성(中興山城)6개의 산봉우리를 아우르며 성안으로 계곡을 품고 있다. 계곡 능선을 따라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일정한 두께로 흙을 다져 쌓은 토성이다. 옥룡 하운마을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중흥산성 옛터를 볼 수 있다. 이곳은 백운산 중턱의 한재를 중심으로 구례 · 남원 · 하동 · 화개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외성은 길이가 4킬로미터 정도이며, 외성 안쪽에 240미터에 이르는 내성을 흙으로 쌓았다. 중흥사 입구 세심정에 남문, 옥룡면 추산리로 넘어가는 오솔길에 북문 터가 남아 있다.

중흥산성에 둘러싸여 있는 중흥사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창건된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 이곳 중흥사는 의병 · 승병의 훈련장으로 사용되었으며, 부근 일대에서는 의병 · 승병연합군과 일본군 간에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결국 사찰은 난중에 소실되어 폐사되었다. 그 후 작은 암자가 건립되어 유지되어 오던 중 1936년 중건했으나 다시 폐사되었다. 1963년 하태호에 의해 다시 중건되었다. 중흥산성은 19991230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과 의병의 격전지였던 중흥산성 옛 터전에 둘러싸여 있는 호국사찰 중흥사는 통일신라 말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화재로 폐사되어 이후, 작은 암자가 건립되어 여승의 힘으로 유지되어 오다 1936년 중건하였으나 다시 폐사가 되었다. 1963년 독지가 하태호에 의해 재 중건되어 오늘날의 규모를 갖추었다.한편, 중흥사에는 국보 103호인 쌍사자석등(광주국립박물관에 보관)3층석탑(보물 제112), 석조지장보살반가상(도 유형문화재 제142) 등의 문화재를 간직하고 오늘도 호국사찰로써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옥룡하운마을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산자락마다 울창한 참나무, 단풍나무, 잣나무숲도 넉넉하고 맑은 계류와 어우러져 오랜 세월 인적이 닿지 않은 처녀지같아 댕기머리 18세 소녀가 미소를 띠며 안겨올 것 같다. 그러나 이렇듯 수려한 풍치의 뒷면에는 그 옛날 왜군과 의병의 격전지로 숱한 의병들이 피 흘리며 산화한 슬픈 역사를 간직한 중흥산성 옛터가 남아있다.




▼ 14시55분 중흥사.. 산속에서 괘나 규묘가 큰 사찰이다. 그러나 인적의 발길은 흔치가 않은것 같다.



▼ 14시59분 '중흥사 석조지장보살반가상'이라 표기되어있다.  



▼ 15시12분 중흥사 입구



▼ 15시18분 옥룡면소재지로 이어가면서 백운산과 억불불 풍경과 지나온 능선은 큰산에 묻혀 보이질 않은다.



▼ 15시20분 옥룡면사무소 앞에서 산행거리 15.0km 4시간30분 산행을 종료하고, 주변 식당에서 백계산휴양림에서 B팀을 싣고오는 산악회버스를 기다린다.





▼ 광양 도선국사 천년숲길 등산안내도



▼ 광양 백계산 제비추리봉 지도



▼ 광양 백계산 제비추리봉 지도



▼ 광양 백계산 제비추리봉 옥룡사지 중흥사 산악회 산행지도



▼ 광양 백계산 제비추리봉 옥룡사지 중흥사 5만 지도

  

  

7. 차량이동(올 때); 목욕 및 저녁식사1시간50

15:45 옥룡면소재지16:00 광양시내(목욕탕60)17:02 광양T.G남해고속도로섬진강교17:17 하동 고전리(축협식당50)19:33 북부산T.G만덕터널20:10 도시철도 동래역 앞 도착

차량이동시간; 4시간25

 

8. 경비;

회비 30,000원 중흥사 1,000

 

9. 특기사항

 

10. 작성일자; 2012321() 0635분 자택에서.........

11. 작성자; *********************849-12-25******************* 도시속의 野人 海廣

광양 백계산 제비추리봉(10.3km)20160331.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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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0 광양 백계산 제비추리봉 중흥사(루트15.0km).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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