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수영사적공원(水營史蹟公園) 백산(첨이대.覘夷臺) 진조말산(眞潮末山) 민락수변공원 정과정(鄭瓜亭)
일자; 2020년 8월 25일(화) 날씨; 맑음
1. 산명; 수영사적공원(水營史蹟公園)~백산(白山)△125.5m(첨이대.覘夷臺)~진조말산(眞潮末山)△74.1m(민락공원)~민락수변공원~정과정 유적지(鄭瓜亭遺跡址)
2. 위치; 부산시 수영구 수영동
3. 인원; 청노루
4. 차량이동(갈 때);
♤06:02 자택→도보→06:30 수영사적공원입구 도착
♤도보이동시간; 00시간28분
♤도보이동거리; 약 2.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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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산행코스;
♤06:35 수영사적공원입구→06:40 수영사적공원(水營史蹟公園.25분)→07:05 수영성 남문→07:11 수영교회→07:17 민락동원센텀아파트→07:22 卍천지암→07:24 아파트산책로→07:33 산길진입→07:37 안부오거리→07:47 백산(白山.삼각점)△125.5m(첨이대.覘夷臺)→08:01 옥련선원갈림길→08:21 미륵불→08:30 卍옥련선원→08:45 일주문→08:47 민락초등학교→08:51 민락본동→08:56 산길진입→08:59 사거리→09:03 체육시설(삼각점×68.9m)→09:05 진조말산(眞潮末山.삼각점)△74.1m(민락공원)→09:10 삼거리→09:20 민락수변공원버스정류장→09:23 민락수변공원(17분)→09:41 수영강산책로→10:23 좌수영교→10:28 수영강산책로 이탈→10:53 정과정 유적지(鄭瓜亭遺跡址 부산 수영구 망미동) 도착
♤산행시간; 4시간18분
♤산행거리(Gps); 10.91km<Map 10.1km>
6. 트랙
▼ 부산 수영사적공원 백산 진조말산 민락수변공원 정과정 산행지도 / 클릭확대
▼ 부산 수영사적공원 백산 진조말산 민락수변공원 정과정 10만 지도 / 클릭확대
도시 산꾼
올 한 해 부산지역 3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추억의 산행지를 찾아 20여 곳 일일 산행코스 만들어 가고 있다.
4월7일 승학산 산행을 시작으로 .. 이제 7~8회 정도 남은것 중에서 오늘은 우리조상들의 역사적 가치가 높은 수영사적공원과 민락동 백산(첨이대) 정과정을 도시산꾼이 되어 찾아든다.
도시의 개발에 묻히고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작고 옹골차고 매서운 산을 한 여름의 폭염과 함께 한다.
▼ 06시35분 수영사적공원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백산(첨이대) 까지는 1시간10여분 걸린다
▼ 06시39분 수영사적공원 부설주차장에서 수영성 답사가 이어진다
수영사적공원(水營史蹟公園)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공원.
조선 시대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는 성지 관련 유적만 남아 있다. 1968년 공원으로 지정되어 수영 공원으로 개장하였다.
1995년부터 문화재 정비 사업을 전개하여 수영 공원을 역사 교육장과 시민 휴식처, 그리고 관광지로 개발하고자 새롭게 단장하여 수영 사적 공원(水營史蹟公園)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수영 사적 공원의 면적은 2만 7128㎡이며, 도시화 과정에서 성은 허물어지고 성지 관련 유적[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8호, 좌수영성지]만 일부 남아 있다. 남쪽 입구에는 수영성 남문(水營城南門)[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7호로 옛 수영국민학교 자리에서 옮겨온 것으로 홍예문이다.]이 있다. 남문에 들어서면 부산 좌수영성지 곰솔[천연기념물 제270호] 및 부산 좌수영성지 푸조나무[천연기념물 제311호]가 있다. 북쪽으로는 숲이 조성되어 있다.
숲의 남쪽 기슭에 경상 좌도 절도사영 수사등의 공덕비군과 수강사(守疆祠)[안용복 장군 사당 및 동상이 있음] 및 송씨 할매당·할배당과 장승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남쪽 평지에는 부산 좌수영성지 푸조나무가 철책에 둘러 싸여 있다. 숲의 북서쪽 기슭으로는 수영 민속 예술관이 있어 지역 민속 예술인이 공연 및 전수 등을 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공원의 서쪽에는 수영구 망미번영로 70번길이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고, 그 서편에 주차장과 의용사가 있고, 25의용단[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12호]이 자리하고 있다.
▼ 06시40분 주차장 뒷편에 있은 25의용단 출입문은 문이 굳게 잠겨있다
※ 25의용단은 부산광역시 수영구 연수로379번길 42[수영동]에 있는 수영 사적 공원 안에 위치한다.
돌로 바닥을 만들고, 세 면에 제단을 쌓았다. 비의 크기는 높이 159㎝, 너비 60㎝, 두께 24.5㎝이다.
1894년(고종 31) 군제 개혁으로 좌수영이 폐지되자, 수영면의 면장이 제사를 주관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 면장이 부임한 이후에는 수영기로회(水營耆老會)에서 제향을 주관하여 밤에 제사를 지냈다. 광복 후 수영고적민속보존회가 제사를 주관하면서부터는 기존의 민간 제사 의식을 「충렬사 제향」과 같은 의식으로 고쳤다. 그 후 ‘수영25의용충혼숭모봉사위원회’가 결성되어 제사를 주관하고 있다.
1974년 부산시에서 25의용단의 경내 정화 공사를 하여 비석단 3개, 비석 25기 건립하였다. 2001년 3월에는 부산광역시와 수영구에서 재차 정비 사업을 벌여 사당인 의용사(義勇祠), 내삼문, 외삼문, 관리사 등을 건립하고, 경역도 확장하여 지금의 규모로 정비하였다.
의용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이다. 의용사에는 의용제인비와 25명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좌우로 배열되어 있다. 왼쪽에는 정인강, 최송엽, 최수만, 박지수, 김팽량, 박응복, 심남, 이은춘, 정수원, 박림, 이수, 신복의 이름을 새긴 비석이 중앙을 향해 나란히 서 있고 오른쪽에는 김오계, 이희복, 최한연, 최한손, 최막내, 최끝량, 김달망, 김덕봉, 이실정, 김허롱, 주난금, 김종수, 김진옥의 이름을 새긴 비석이 중앙을 향해 나란히 서 있다. 1972년 6월 26일에 의용제인비를 모신 단을 지칭하는 25의용단이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다.
25의용단은 임진왜란 때 경상좌수영성을 지키다 순절한 군인과 민간인 25명의 충렬을 기리는 부산의 주요 문화재이다. 이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좌수영성에서 일본에 저항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를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에게도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는 사후에도 표창하였음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 06시41분 25의용단 의용사는 문이 잠겨 담 넘어로 들여다 본다
▼ 06시43분 독신묘와 산신당
▼ 06시44분 수영민속예술과 놀이마당과 수영사적원 건물이 있다
▼ 06시51분 수영사적공원 내부 이정표
▼ 06시53분 안용복장군 사당과 동상
안용복 장군
숙종 때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일본 막부정부가 자인하도록 활약한 민간 외교가이자 어부이다. 동래부 출신으로 홀어머니 아래에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엄한 가훈을 받고 자랐다. 일찍이 동래 수군으로 들어가 능로군(能櫓軍)으로 복무하였고, 부산의 왜관(倭館)에 자주 출입해 일본말을 잘하였다.
1693년(숙종 19) 동래 어민 40여 명과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고기를 잡기 위해 침입한 일본 어민을 힐책하다가 부하 박어둔(朴於屯)과 함께 일본으로 잡혀갔다. 이 때 호키주[伯耆州] 태수와 에도막부에게 울릉도가 우리 땅임을 주장하고, 대마도주(對馬島主)가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쌀과 베의 도량을 속이는 등 농락이 심한 것 등을 밝혀, 막부로부터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하는 서계를 받아내었다.
그런데 서계를 가지고 오는 도중 나가사키[長崎]에서 대마도주에게 서계를 빼앗겼다. 대마도주는 울릉도를 차지할 계획으로 다케시마[竹島] 문서를 위조해, 같은 해 9월 차왜(差倭)를 동래에 보내 안용복을 송환하는 동시에, 예조에 서계를 보내 조선의 어민이 일본 영토인 다케시마에서 고기 잡는 것을 금지시켜달라고 요청하였다.
당시 좌의정 목내선(睦來善)과 우의정 민암(閔黯)이 무사주의의 외교 정책을 취해, 비워둔 땅으로 인해 왜인과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좋지 않은 계책이라 하였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섬에 왕래를 금지하는 조선 정부의 공도정책(空島政策: 주민들이 섬을 도피처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비워두는 정책)에 일본도 협조하도록 권하는 예조 복서(禮曹覆書)를 작성해, 동래의 일본 사신에게 보냈다. 내용에는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히 밝혀두었다.
그런데 이듬해인 1694년 8월에 대마도주는 다시 사신을 보내 예조 복서를 반환하면서, 울릉도라는 말을 빼고 다시 작성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 때 영의정 남구만(南九萬), 우의정 윤지완(尹趾完)이 강경한 태도로, 삼척첨사로 하여금 울릉도를 조사시켰다. 그리고 접위관을 동래에 보내 오히려 일본이 남의 영토에 드나든 무례함을 책하는 예조 서계를 차왜에게 전달하였다.
1696년 봄에 안용복은 다시 10여 명의 어부들과 울릉도에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마침 어로중인 일본 어선을 발견하였다. 이에 송도(松島)까지 추격해 조선의 영토에 들어와 고기를 잡는 침범 사실을 문책하였다. 또 울릉우산양도감세관(鬱陵于山兩島監稅官)이라 자칭하고, 일본 호키주에 가서 태수에게 국경을 침범한 사실을 항의, 사과를 받고 돌아왔다.
나라의 허락 없이 국제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조정에 압송되어 사형까지 논의되었으나 남구만의 간곡한 만류로 귀양갔다. 이듬해인 1697년 대마도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하고 울릉도를 조선 땅으로 확인한다는 막부의 통지를 보냈으나, 안용복의 죄는 풀리지 않았다.
안용복의 활약으로 철종 때까지는 울릉도에 대한 분쟁이 없었다. 한 어부로서 나라의 일에 크게 공헌한 모범이 된다.
▼ 06시55분 수영사적공 푸조나무
▼ 06시56분 푸조나무
▼ 06시58분 선정비 33기
▼ 06시59분 수영사적공원 놀이마당 뒷편 제일 높은곳 고도 측정 결과 31m
▼ 07시03분 천연기념물 제270호 수영곰솔
▼ 07시04분 수영성 남문
▼ 07시05분 수영성 남문에서 수영사적공원 답사를 마치고 민락동 백산(첨이대)으로 이어간다
♬ 음악 동영상 / 남자는 말합니다
남자은 말합니다
아티스트 이정옥 장민호
여행 갑시다 나의 여자여
하나 뿐인 나의 여자여
상처투성이 병이 들어 버린 당신
여행가서 낫게 하리다
나란 사람 하나만 믿고 같이 살아온
바보 같이 착한 사람아
남자는 말합니다 고맙구요 감사해요
오직 나만 아는 사람아
안아봅시다 나의 여자여
하나 뿐인 나의 여자여
고운 얼굴에 쓰여진 슬픈 이야기
오늘 밤에 지워 봅시다
나란 사람 하나만 믿고 같이 살아온
바보 같이 착한 사람아
남자는 말합니다 고맙구요 감사해요
오직 나만 아는 사람아
나란 사람 하나만 믿고 같이 살아온
바보 같이 착한 사람아
남자는 말합니다 고맙구요 감사해요
오직 나만 아는 사람아
오로지 나만 아는 사람아
▼ 07시08분 옛날 수영성에 수영국민학교가 있었던 곳인데,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현재 광안동에 위치한 수영초등학교로 이전 되었다.
▼ 07시13분 수영교회와 수영팔도시장 입구를 지나 수영교차로에서 도로변 횡단보도 건너면 행정구역 민락동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무소”는 코뿔소를 뜻하는 말. 코뿔소는 무리를 짓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습성이 있는데 고대의 수도승들도 걸식을 하면서 홀로 수행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처럼 깨달음의 길은 혼자서 가는 길이기에 무소의 뿔이 한곳을 향하듯이 혼자서 가라고 한 것이다.
如獅子聲不驚 사자처럼 소리에 놀라지 말고
如風不繫於網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말고
如蓮花不染塵 연꽃처럼 진흙에 물들지 말고
如犀角獨步行 무소의 뿔처럼 혼자 걸어가라
- <수타니파타(Sutta_nipāta)> 중에서..
▼ 07시17분 민락센텀 비스타동원2차 아파트 정문 앞을 지나 민락동 주택가를 헤집으며 백산으로 오른다
▼ 07시19분 민락동 성화비치빌 앞에서 왼쪽길
▼ 07시22분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천지암 암자 앞에서 데크계단을 만난다
▼ 07시22분 천지암 대문 앞에서 데크계단오르면 민락센텀비스타동원아파트 산책로가 백산(첨이대)으로 이어진다
▼ 07시24분 민락동원아파트 산책로(울타리) 따라 백산으로 향한다
▼ 07시26분 아파트산책로에서 금련산과 황령산
▼ 07시31분 아파트산책로에서 백산으로 ..
▼ 07시33분 아파트산책로에서 백산 숲길로 들어선다
▼ 07시34분 백산 등산로
▼ 07시35분 백산 등산로에서 다시한번 금련산과 황련산
▼ 07시37분 안부5거리
▼ 07시38분 안부5거리에서 가운데 능선길 10여분이면 정상에 올라선다
▼ 07시46분 백산 정상 아래 산불초소
▼ 07시46분 산불초소에서 뒤돌아본 황련산
♬ 음악 동영상 / 눈물속에 핀 꽃
눈물속에 핀 꽃
아티스트 안정희.허영란
찬이슬 모진바람
그세월이 몇날이던가
돌아보니 너무나도
참을 수 없던 고통이었어라
한송이 나의 꿈을 후회없이
이제는 피었더라
그렇게도 몸부림 쳤던
슬픈날이여 멀리 가거라
행복의 계단에서
나 이젠 고운 나래를 펴리라
한송이 나의 꿈을 후회없이
이제는 피었더라
그렇게도 몸부림 쳤던
슬픈날이여 멀리 가거라
행복의 계단에서
나 이젠 고운 나래를 펴리라
나 이젠 고운 나래를 펴리라
나 이젠 고운 나래를 펴리라
▼ 07시47분 백산 125.5m 정상이다. 백산 첨이대 표석과 삼각점이 있다
▼ 07시48분 백산(첨이대) 125.5m 정상표석
백산(白山) 125.5m
수영천이 바다와 어울리는 자리에 민락동의 배산(背山) 노릇을 하는 산이 백산입니다. 예전에 백산아래에 갈대가 우거져 있어 백학(白鶴)이 찾아들어 백학산이라 한 것이 백산이 되었다는 말도 있고, 수영천과 바다에 안개가 깔릴 때면 산 전체가 하얗게 보여 그렇게 불렸다는 말도 있습니다. 옛 이름인 향산(向山)을 잘못써서 白山이 되었다는 설도 있으나「동래부지」나「동래영지」에도 백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산 정상에는 호랑이 굴이 있었는데 지금은 무속인들이 주술하는 곳이 되어 있으며, 백산의 형상이 마치 수영을 버리고 도망가는 사자의 모습이라 하여 수영지역의 번영을 기원하는 뜻에서 수영야류 제4과장 사자무과장에는 호랑이를 사자의 먹이로 제공하는 특이한 점이 있다. 1998년 5월 24일에는 부산을 가꾸는 모임에서 조선시대 좌수영 수군이 바다를 침략하는 왜구들을 살피는 망대가 있었던 곳을 기념하는 백산 점(첨)이대'를 산 정상에 세웠다.
백산 첨(점)이대(白山 覘夷臺)는 이 지역이 바다와 나라를 지킨 경상좌수영 수군의 전초기지였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1998년 ‘부산을 가꾸는 모임’에서 건립한 비석이다. 점이(覘夷)란 오랑캐를 엿보는 망대라는 뜻이다.
이곳 점이대는 임진왜란 이전에는 왜구의 동태를 살폈고,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의 동향을 감시하는 장소로서 중요한 사명을 수행했던 곳이다. 관측된 일본군의 동태는 경상좌수영에 보고되었고 그 내용은 봉화를 통해 인근의 조선군 진영으로 전달되었다.
▼ 07시49분 백산 정상에서 금정산 천성산 방향
▼ 07시50분 백산 정상에서 장산과 함박산 달음산 방향
▼ 07시52분 백산 정상에서 동영상 .. 황령산 장산 수영강 등등 ..
▼ 07시51분 백산(첨이대) 125.5m 정상표석에서 한컷하고, 백산(첨이대)에서 진조말산 정상까지 1시간정도 걸린다
▼ 07시56분 백산 125.5m 정상 체육시설 .. 예전엔 조망이 좋았은데 수목이 자라서 바다와 주변이 막혀 버렸다
▼ 08시01분 백산 정상에서 옥련선원 가는길 중 왼쪽은 코로나 19로 패쇄되어 다시 되돌아 왔다
▼ 08시08분 백산 정상에서 왼쪽 백련선원 길은 여기서 막혀 다시 되돌아갔다
▼ 08시13분 왼쪽길로 가다가 10여분 까먹고 다시 되돌아와서, 오른쪽길로 옥련선원으로 이어간다
▼ 08시15분 백산 정상에서 옥련선원 가는길
▼ 08시19분 옥련선원 미륵불 올라가는 계단
▼ 08시21분 옥련선원 미륵불
▼ 08시24분 미륵불 넓은마당을 한바퀴 돌면서, 미륵불 옆태
▼ 08시28분 미륵불에서 떠나 옥련선원 경내 모습
옥련선원(玉蓮禪院)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670년 원효(元曉)가 백산사(白山寺)로 이름을 정했다는 설이 있으며, 910년에 최치원(崔致遠)이 백산사에서 은둔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백산은 동래 지역의 진산(鎭山)으로 지역민의 신앙의 장소였다. 백산의 관덕암(觀德巖)은 특히 자손 번창을 위한 영험 있는 기도처였다고 전해지며 관덕암 마애 여래상은 지금도 남아 있다. 또한 백산은 조선 시대 경상 좌수영의 중요한 군사적 기지이기도 하다. 백산의 정상에는 적을 살피는 누대(樓臺)라는 첨이대(覘夷臺)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신앙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백산의 사찰은 1635년(인조 13) 해운선사가 옥련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76년에는 주지 현진(玄眞)이 보현전을 중창하면서 옥련선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어서 1985년 옥련유치원을 지었고, 1992년 석조 미륵 대불을 봉안하였다. 정월 대보름이면 대규모 달집태우기 등 연례행사를 치르고 있다.
옥련선원의 가람 구성은 1976년에 중창한 보현전을 비롯하여 그 이후에 건립한 대웅전·심우전·내원정·수련정·연마실·범종각을 비롯해 옥련 회관과 부속 유치원으로 되어 있다. 대웅전 안에는 관세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고 신중탱화와 관음 탱화가 있다. 심우전은 선방(禪房)으로, 내원정은 신도회 사무실로, 보현당과 수련정은 요사로 사용하고 있다.
관덕암의 마애 지장보살 좌상은 조성 연대에 대해서 논란이 있으나, 대체로 조선 후기[17~18세기] 작품으로 보며, 부산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마애불의 형태를 띠고 있다. 얼굴과 머리 부분을 음각으로 표현하고 다른 부분은 양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 역시 드문 기법이라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현재 상태는 거꾸로 뒤집혀져 있다. 또 1992년 1,500톤의 화강석으로 제작한 약 15m 높이의 미륵 대불이 있다. 이밖에 진신 사리 5과를 모신 사리탑과 임진왜란 때 죽은 무명 고혼(無名孤魂)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임진왜란 천도비가 있다.
▼ 08시29분 옥련선원 대웅전과 삼성각 가는길
▼ 08시30분 옥련선원 대웅전
▼ 08시30분 대웅전 법당 석가모니
▼ 08시31분 삼성각 / 여기를 답사 해야 할 이유 .. 아래 설명서
마애지장보살좌상(磨崖地藏菩薩坐像)은 부산광역시 수영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마애지장보살좌상이다. 2001년 5월 16일 부산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옥련선원 내 삼성각(三聖閣) 뒷산에는 예로부터 인근 주민의 신앙대상으로 전해 오는 관덕암(觀德巖)이라는 바위군이 있는데, 이 바위군에서 벼락 때문에 떨어져 나온 바위면에 보살좌상 1구가 새겨져 있다. 보살좌상이 새겨진 바위는 거대한 바위 둘이 맞붙어 있었던 것인데 벼락을 맞아 깨어지면서 거꾸로 박혀있기 때문에 보살좌상은 아래위가 거꾸로 되어 있다.
얕게 조각되었던 보살좌상은 근래에는 붉고 푸른 페인트가 칠해졌던 모습이 뚜렷한데, 바위가 떨어지면서 깨어졌는지 이후에 인위적으로 훼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 나 거의 대부분 훼손되어 윤곽만 남아 있으나, 다행히 선각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은 남아 있어 성격 파악에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 보살좌상은 상호(相好, 부처나 보살의 얼굴부분)와 머리 부분을 음각으로 표현하였는데, 머리 위에는 육계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고 이마 윗 부분에 두건대(頭巾帶)가 뚜렷하여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음이 분명한 점으로 보아 지장보살상으로 보여진다.
또한 상호와 머리 부분을 음각으로 표현한 이외에는 두광·신광과 동체의 각부, 연화좌 등 모든 부분을 양각으로 표현은 하였으나, 그 조각이 얕아서 암각화와도 같은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불화의 맥락에서 고찰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광배의 처리를 볼 때 조선후기인 17∼18세기에 조성된 불화 광배에서 이 보살좌상의 광배에서 볼 수 있는 방사선 무늬의 표현을 볼 수 있어 이 마애지장보살좌상이 조선후기인 17∼18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게 한다.
옥련선원이 위치한 백산은 경상좌수영이 있었고, 백산의 정상부에 첨이대가 있는 등 남해를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일 뿐 아니라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사명대사와도 관련이 깊은 곳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 옥련선원이 「마애지장보살좌상」은 해난구제와 수군의 귀의불(歸依彿)로서 역사적 의의가 깊다고 하겠다.
아울러 부산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마애불인 동시에 상호와 머리 부분을 음각으로 표현하고 다른 부분은 양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 등은 조선시대 뿐 아니라 우리나라 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크게 평가된다고 하겠다.
▼ 08시32분 삼성각 법당 / 클릭확대
▼ 08시37분 옥련선원 전경
▼ 08시39분 옥련선원에서 가야할 진조말산(민락공원) 모습
▼ 08시45분 옥련선원 일주문을 뒤로하고 진조말산으로 이어간다
♬ 음악 동영상 /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자(女子)
너무도 아름다운 여자(女子)
아티스트 김지노.박종이
그 날밤 마주앉은 순간
내 마음 설레임 속에
그대에게 눈짓을 줄까
알 수 없는 사랑의 느낌이 오네
말없이 바라보는 눈빛
너무도 애처로워서
나도 몰래 그대 손 잡으니
부끄러워 고개 숙이는 그녀
아무런 말도 없이 미소만 짓는
야릇한 네 마음을 잡을 수 없네
아 사랑아 아 사랑아
내 맘 좀 알아 주려마
향긋한 몸 내음이 나는
너무도 아름다운 여자
이런저런 말을 건네도
수줍어 고개 숙이는 그녀
속으로 무슨 생각할까
헤아려 볼 수 없지만
내 마음은 알 길이 없네
은근히 조바심만 나네
아무런 말도 없이 미소만 짓는
야릇한 네 마음을 잡을 수 없네
아 사랑아 아 사랑아
내 맘 좀 알아 주려마
▼ 08시47분 민락초등학교 앞을 지나 민락본동으로 향한다
▼ 08시50분 민락교버스정류장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 08시51분 가야할 진조말산(민락공원) 모습, 넘어서 민락수변공원이다
▼ 08시56분 진조말산 민락본동에서 진입로 입구
▼ 08시56분 진조말산 등산로입구에서 10여분이면 정상에 올라선다
▼ 08시59분 사거리에서 가운데 능선 길
▼ 09시02분 오른쪽 체육시설에 삼각점이 있고, 조망은 별로다
▼ 09시04분 68.9봉에 삼각점이 있다. 지도에 표기된 삼각점과 높이
▼ 09시07분 진조말산 74.1m 정상 / 진조말산 정상에 삼각점과 참호터가 있다
진조말산(眞潮末山) 74.1m
진조암. 민락동 남단 진조말산에 있는 자연석 바위다. 조선시대에 그 해의 첫 어로작업이 시작되던 날, 수영 수사가 이곳에 나와 의자처럼 생긴 바위에 앉아 어부와 수군들을 격려하였다고 하며, 이곳은 수영강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곳으로서 고기가 많이 잡힌 곳으로 유명하며 무형문화재 62호인 좌수영어방놀이가 이루어진 현장이다.
민락본동 앞산으로 일명 참작산 이라고도 한다. 이 산 끝부분에는 진호암이란 자연석이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흡사 의자모양으로 생긴 이 바위에 좌수영 수사가 앉아 투망(그물 던지는 일)하는 어민을 격려하였으며, 이에 힘을 얻은 어부들이 잡은 고기를 바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 09시07분 진조말산 정상 주변의 참호터 모습에서, 옛날 수영국민국학교에서<소풍? 친구와 놀이?> 여기 무덤 처럼 생긴 호속에서 '해방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여기, 어딘가에 살고있었다.
▼ 09시08분 진조말산 74.1m 정상을 뒤로하고 민락수변공원으로 이어간다. 15분이면 족하다
▼ 09시10분 진조말산 정상 아래 삼거리에서 민락수변공원 가는길
▼ 09시13분 하산 능선길 민락수변공원과 광안대교
▼ 09시15분 넓은 공터 지나서 ..
▼ 09시17분 공사중단된 민락공원 놀이시설 폐허된?
▼ 09시20분 도로와 합류되어 3분이면 민락수변공원이다
♬ 음악 동영상 / 낙엽따라 가버린사랑
낙엽따라 가버린사랑
아티스트 차중락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며
따스하던 너의 두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그잎새에 사랑의 꿈
고이 간직하렸더니
아아아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 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따라 가버렸으니
아아아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 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따라 가버렸으니
▼ 09시23분 민락수변공원의 서쪽 끝 부분에서 광안대교와 민락항
▼ 09시24분 민락수변공원을 서서히 움직이면서 동쪽으로 답사한다. ㅋ
▼ 09시28분 민락수변공원에는 태풍에 밀려온 큰 바위들이 여러개 전시되어 있다
▼ 09시29분 민락수변공원에서 청소하는 수영구청 환경미화원
▼ 09시30분 민락수변공원 해녀상, 이뿌다 조각가의 Y모습 일까?
▼ 09시30분 민락수변공원의 거북이 모형
▼ 09시32분 조개 조각품과 태풍에 밀려온 바위
▼ 09시32분 콩레이 바위 내역
▼ 09시34분 민락수변공원에서 동영상으로 .. 광안대교와 주변풍경
▼ 09시39분 민락수변공원에서 장산과 센텀시티
▼ 09시40분 민락수변공원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일까 ?
▼ 09시42분 민락수변공원을 벗어나 수영강 산책로 따라 정과정유적지로 이어간다. 폭염 땡볕 1시간 정도 걸린다
▼ 09시43분 수영강 산책로에서 센텀시티
▼ 09시47분 산책로에서 왼쪽 지나온 진조말산 모습
▼ 09시51분 민락교 밑으로 산책로 이어진다
▼ 09시56분 수영강과 센텀시티 공공시설
▼ 10시00분 부산조종면허시험장
▼ 10시02분 닥아오는 수영교 돌고래 조형물 모습
▼ 10시03분 수영교 밑 산책로에서 APCE나루공원과 공공시설건물
▼ 10시04분 수영강과 센텀시티
▼ 10시04분 가야할 수영강 산책로와 좌수영교 모습
▼ 10시07분 쉼터와 전망대가 곳곳에 여러군데 있다
▼ 10시08분 수영강과 장산
▼ 10시10분 쉼터와 전망대 자전거도로
▼ 10시15분 수영강 텃새 / 백로 ?
▼ 10시16분 쉼터에서 ..
▼ 10시20분 좌수영교와 센텀시티 아파트
▼ 10시23분 좌수영교
▼ 10시24분 수영강 산책로에서 과정교 모습
♬ 음악 동영상 / 남자의 일생
남자의 일생
아티스트 백수정
1절
멋지게 살자 다짐했던나
돌아보니 해는기울고
까만 머리엔 하얀 설움이
눈꽃처럼 내려앉았네
나팔 바지에 빽구두 신고
잘나간다 큰소리 쳤지
한잔의 술에 눈물 채우니
세월이란 안주 내미네
뭘해도 폼이 났었지
뭘해도 자신있었지
하지만 인생이란게
그게 전부가 아니야
살다가 보면 알게 될꺼야
이세상에 제일 인것은
툭 터놓고 웃을수 있는
당신있어 제일인 것을
이게 바로 남자의 일생
1.2절 가사
▼ 10시28분 수영강 산책로 이탈하여 정과정유적지로 이어간다
▼ 10시33분 정과정 유적지로 이어가는 도로
▼ 10시39분 육교위에서 정과정 유적지 모습
▼ 10시39분 육교위에서 금련산과 황령산
▼ 10시47분 정과정 유적지 앞에서 횡단보도 건넌다
▼ 10시48분 정과정 유적지 입구계단
▼ 10시48분 정과정유적지 안내판
※ 고려 시대 문인 정서(鄭敍)가 모함을 받아 1151년(의종 5)~1157년(의종 11)까지 귀양살이를 한 곳이어서 곳곳에 정서와 관련된 유적지가 있다. 정서가 임금이 불러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지은 「정과정곡(鄭瓜亭曲)」은 고려 가요에서 작자가 알려진 유일한 노래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정과정 유적지(鄭瓜亭遺跡址)는 고려 시대 문신인 정서가 의종(毅宗) 때 유배 생활을 하면서 정자를 짓고 오이 밭을 일구며 임금을 그리워하는 고려 가요인 「정과정곡」을 지은 곳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동래부지(東萊府誌)』 등에 따르면 과정(瓜亭)은 “동래부 남쪽 10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자는 없으나 그 터는 남아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과정 유적지에 대한 고증은 최근까지 여러 설이 있었다. 그래서 부산교육대학 부속초등학교 어린이회에서 세운 정과정 옛터라는 표석은 환경시설관리공단 수영사업소 옥상 정원에 있기도 하다.
원래의 지형은 연이은 개발로 인하여 알아볼 수는 없지만, 지금의 위치상 수영구 망미동 산7-2번지 일원에 해당하는, 수영 하수 처리장에서 고려제강에 이르는 수영강변 지역일 것으로 짐작된다. 수영천 원동교의 서쪽 제방을 타고 남쪽으로 5.6㎞ 정도 내려가면 도시 고속 국도가 지나는 옆에 숲이 우거진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한다.
정과정 유적지는 2003년 5월 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되어 조그마한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정과정의 옛 자취를 따라 여러 지명들이 생기기도 하였다. 토곡 연산1동에서 연산9동을 지나는 길은 과정로, 정서의 유적지가 분포된 온천천의 연산교와 망미교 사이 구간은 과정천, 경동레미콘에서 토곡 사거리 쪽 세 방향으로 가는 길은 정서로, 연산1동 경찰전직지원센터에서 망미역교차로까지 3.75㎞의 길을 과정로라고 부르고 있다.
▼ 10시49분 정과정유적지의 이 바위은 최초위치에서 현재위치로 가져 온 것 같다
▼ 10시50분 바위 옆 팽나무 역시 마찬가지 ..
▼ 10시51분 정과정 정자 위로 올라가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鄭瓜亭曲(정과정곡)
내 님믈 그리와 우니다니
山(산) 졉동새 난 이슷하요이다.
아니시며 거츠르신 달 아으
殘月曉星(잔월 효성)이 아라시리이다.
넉시라도 님은 한대 녀져라 아으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過(과)도 허믈도 千萬(천만)업소이다.
말힛마리신뎌 살읏븐뎌 아으
니미 나랄?하마 니자시니잇가.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해설
내 님(의종)을 그리워하여 울며 지내더니
산 접동새와 난 (처지가) 비슷합니다.
(역모에 가담했다는 나에 대한 참소가) 옳지 않으며 거짓이라는 것을
잔월효성(지는달과 새벽별)만은 일고 있을 것입니다.
넋이라도 님을 함께 모시고 싶어라 아으
(내 죄를)우기던 이 그 누구입니까
(나는) 잘못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뭇 사람들의 참소하던 말입니다.
슬프구나 아으
님께서 벌써 나를 잊으셨나이까
(그렇게 하지) 마십시요. 님이여 내 사연 들으시고 다시 사랑해 주소서.
정과정곡(鄭瓜亭曲)
고려 의종(毅宗) 때 정서(鄭敍)가 유배지인 동래(東萊)에서 임금을 사모하는 심정을 산 접동새에 비유하여 지은 노래이다.
정서가 스스로 호를 과정(瓜亭)이라고 했기 때문에 후세인들이 이 노래를 '정과정(鄭瓜亭)'이라 불렀다.
정과정곡(鄭瓜亭曲)은 국문으로 전하는 고려가요 가운데 작가가 확실한 유일한 노래이다.
▼ 정과정 중건기념비
▼ 10시53분 정과정 정자에 올라 ..
▼ 10시53분 정과정 유적지에서 산행거리(GPS) 10.91km<Map 10.1km> 4시간18분 산행을 종료한다
▼ GARMIN GPS 트립콤퓨터 데이터 10.91km
▼ Oruxmaps 트랙통계 9.21km
▼ 부산 수영사적공원 백산(첨이대) 진조말산 민락수변공원 정과정유적지 Oruxmaps / 클릭확대
▼ 부산 수영사적공원 백산(첨이대) 진조말산 민락수변공원 정과정유적지 5만 지도 / 클릭확대
▼ 부산 수영사적공원 백산(첨이대) 진조말산 민락수변공원 정과정유적지 5만 지도 / 클릭확대
7. 차량이동(올 때);
♤11:05 정과정 유적지→도보→11:21 자택도착
♤도보이동시간; 00시간16분
♤도보이동거리; 약 1.2km
8. 경비;
9. 특기사항
10. 작성일자; 2020년8월26일(수) 09시45분 자택에서.........
11. 작성자; *********************1656-20-20****************** 도시속의 野人 海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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