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오봉산(五峰山) 백이산(伯夷山) 숙제봉(叔齊峯) 상데미 맹미바위(피바위)
일자; 2013년 10월 3일(목) 날씨; 맑음
1. 산명; 맹미바위(피바위)~상데미△661.8m~미산봉△630m~오봉산(五峰山)△524.7m~숙제봉(叔齊峯)△356.2m~백이산(伯夷山)△369m
2. 위치;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사촌리 서촌마을
3. 인원; 청노루
4. 차량이동(갈 때);
♤06:10 자택<자가승용차>→만덕터널→06:32 북부산T.G→남해고속도로(순천-부산)→07:22 군북T.G→함안 군북→07:35 서촌마을 도착
♤차량이동시간; 1시간25분
♤차량이동거리; 87km<28,862km→28,949km>
▼ 함안 오봉산 백이산 숙제봉 상데미 맹미바위 트랙지도
5. 산행코스; 원점회귀
♤07:45 서촌마을→서촌교→07:53 신촌마을경노당→사촌분교(폐교)→07:57 능선진입→능선→08:00 김해김씨 묘→08:03 송전탑→08:11 이정표(미산봉3.67km)→08:31 삼거리봉 좌측→09:11 전망대→09:18 광산터→09:33 맹미바위 우회길→09:39 맹미바위 안부(맹미바위 정상 다녀옴)→09:42 맹미바위(피바위)→10:10 상데미△661.8m(헬기장)→10:24 미산봉△630m(낙남정맥 합류)→10:40 ×557봉→10:55 오곡재→11:15 능선갈림길→11:18 삼각점524.4봉(점심20분)→11:53 ×528.9봉(낙동정맥 이탈)→12:43 오봉산(五峰山)△524.7m(삼각점10분)→13:01 삼거리→13:20 진입잘못(알바)10분→13:30 임도삼거리→13:42 유동고개→14:09 명동마을갈림길→14:15 숙제봉(叔齊峯)△356.2m(쉼터)→14:27 체육시설→14:39 백이산(伯夷山)△369m(산불카메라.무선송신탑)→15:03 백이산둘레길(삼거리)→15:06 서촌마을갈림길→15:15 서촌마을 앞 1029지방도(알바 15분)→15:30 서촌마을 도착
♤산행시간; 7시간45분
♤산행거리; 18.0km<MapSource 10.8km>
6. 트랙 2013-10-03 함안 오봉산 백이산 숙제봉 상데미 맹미바위(18.0km원점).gpx
함안 백이산 숙제봉(8.5km원점)20150416.gpx
함안 백이산 숙제산 오봉산(15.0km원점)864-haman-baekisanobongsan.gpx
▼ 함안 오봉산 백이산 숙제봉 상데미 맹미바위 산행지도 / 5만 <오봉산 정상 행정구역은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
▼ 함안 오봉산 백이산 숙제봉 상데미 맹미바위 10만 지도
중국 고대 은나라와 주나라 교체기의 이야기인 백이숙제(伯夷叔齊) 고사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열전 첫 장에 나온다. 사마천이 사기 열전의 첫 머리에 굳이 백이와 숙제 이야기를 기술한 까닭은 무엇일까? 단순히 충절의 중요성만 강조하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이라면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인간성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으리라.
경남 함안의 최서단 읍면인 군북면에 솟아 있는 백이산(368m)과 숙제봉(356.2m)은 바로 이 백이숙제의 고사에서 비롯됐다. 원래는 쌍안산, 쌍봉산 등으로 불렸지만 조선 초기 세조(수양대군)가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올랐을 때 이에 반대한 생육신 중 한 명인 조려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이 산 아래에 은거, 세상을 등지며 살았다. 그의 충절을 기리면서 이후 숙종 임금이 백이숙제의 이야기에 빗대 찬양했고, 이후로 산 이름도 백이산 숙제봉으로 불렀다고 한다.
유난히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투사가 많이 배출된 군북 사람들의 충절 정신도 백이산 숙제봉의 기상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지역민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부분이다.
▼ 07시45분 서촌마을주차장에서 신촌마을 방향 포장도로를 따라 산행시작
▼ 07시53분 신촌마을 삼거리에서 좌측 원효암 방향으로 간다
▼ 07시57분 폐교된 사촌분교를 지나서 사랑목가든 입구에서 우측 산길로 올라간다 / 이정표 미산봉5.2km 여항산
▼ 08시12분 능선 오르막길은 인적이 끊어진지 오래되어 잡풀이 길을 흐리게한다
▼ 08시31분 서촌마을에서 약 45분후 삼거리봉에서 좌측으로 간다 / 직진은 오봉리
▼ 09시06분 능선길 방구들이 많이 나타난다
▼ 09시12분 전망대에서 오곡리와 삼각점524.4봉과 낙남정맥이 갈라지는 봉우리
▼ 09시12분 전망대에서 함 당겨본 맹이바위 / 이지역 사람들은 피바구(血岩)이라 부르는 연유은 처녀와 구렁이 총각의 전설을 품고있기 때문이다
▼ 09시19분 폐광터을 지난다
▼ 09시21분 맹미바위 가는길 능선에는 이런 저런 바위가 많다 / 피바구 옆으로 개바구. 농바구 등등 ..
▼ 09시22분 맹미바위로 닥아가는 마을이 설레인다
▼ 09시37분 맹미바위을 좌측으로 우회하여 맹미바위위로 올라간다
▼ 09시39분 맹미바위 안부에서 맹미바위 정상을 다녀온다 / 약10분 정도 소요됨
▼ 09시45분 맹미바위 / 피바구(血岩) 정상
▼ 09시46분 피바구(맹미바위)에서 아리따운 처녀와 구령이 총각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 피바위에서 약 25분 상데미에 오른다
※ 피바위와 관련해 전해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오곡마을 처녀와 총각이 이곳에서 밀회를 즐겼으나 구렁이가 총각으로 변신한 사실이 들통났고, 처녀와 구렁이가 사투를 벌여 둘 다 피를 흘리고 죽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피가 암벽을 타고 흘러 굳어진 후 비바람과 풍화작용에도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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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는 사랑의 날개를 단 것처럼 단꿈에 취해 한없이 높은 곳으로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것만 꾸었다.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 피었고, 처녀는 총각의 품속으로 자꾸 파고 빨려 들어가는 같았다. 처녀의 온몸이 청년의 가슴 속에 녹아들어 숨만 새근거렸다.
처녀는 청년과의 단꿈에 빠져 이 세상의 아무 것도 부럽지 않고 이렇게 꿈이 깨지 않고 오래토록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처녀는 청년의 품이 너무 따뜻하고 좋아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몰랐다.
이제 달도 서산머리에서 숨바꼭질을 할려고 스르르 얼굴을 숨길 쯤 이었다.
처녀의 온몸이 오스스 추워오기 시작했다. 처녀는 목이 마르고 숨이 가빠오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그 황홀했던 꿈에서 천천히 깨어났다. 머리카락을 손으로 뒤로 빗고 정신을 차린 처녀가 그만 숨이 넘어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떨었다.
“아앗, 사람 살려.”
처녀는 자신의 몸이 커다란 구렁이에게 온몸이 칭칭 감겨 있는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구렁이가 처녀의 몸을 조금씩 조여왔다.
처녀는 두려움으로 그 구렁이에게서 빠져나오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몸부림을 치며 고함을 질러댔다.
차가운 새벽하늘에 처녀의 비명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이 산 저산으로 울려퍼져 나갔다. 메아리만 처녀의 귀로 되돌아왔다. 처녀는 그럴수록 발버둥을 치며 구렁이의 몸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악을 쓰며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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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시10분 상데미 661.8m 정상에는 헬기장이다
▼ 추억의 포토 1998년10월31일 여항산 정상에서 바라보니 가보고싶어서 상데미668.1m(헬기장) 정상 왕복
▼ 추억의 포토 1998년10월31일 상데미 정상에서 의상대
▼ 10시12분 상데미(661.8m) 정상에서 함안군
▼ 10시13분 상데미(661.8m) 정상에서 맹미바위(피바구)와 지나온 능선과 가야할 오봉산 숙제봉 백이산이 줄을 서있다
▼ 추억의 포토 1998년10월31일 상데미(헬기장661.8m) 정상에서 바라보던 맹이바위 모습
▼ 10시13분 상데미(661.8m) 정상에서가야할능선 낙남정맥 능선과 오봉산
▼ 10시12분 상데미(661.8m) 정상에서 미산령 여항산 능선 모습
▼ 추억의 포토 1998년10월31일 상데미 정상(헬기장)에서 지나온 미산령 여항산 능선 모습
▼ 추억의 포토 1998년10월31일 상데미661.8m 정상(헬기장)에서 당겨본 여항산 정상 모습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무소”는 코뿔소를 뜻하는 말. 코뿔소는 무리를 짓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습성이 있는데 고대의 수도승들도 걸식을 하면서 홀로 수행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처럼 깨달음의 길은 혼자서 가는 길이기에 무소의 뿔이 한곳을 향하듯이 혼자서 가라고 한 것이다.
如獅子聲不驚 사자처럼 소리에 놀라지 말고
如風不繫於網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말고
如蓮花不染塵 연꽃처럼 진흙에 물들지 말고
如犀角獨步行 무소의 뿔처럼 혼자 걸어가라
- <수타니파타(Sutta_nipāta)> 중에서..
▼ 10시24분 미산봉 630m / 여항산갈림길 낙동정맥 합류
▼ 10시24분 미산봉 정상 630m 이정표 / 낙남정맥 합류지점 미산봉에서 오봉산 방향으로 간다
▼ 10시40분 미산봉에서 고도가 팍 낮아져 올라간 557봉에 시그널이 주렁주렁하다
▼ 10시54분 557봉에서 고도가 팍 낮추어져 도착한 오곡재(비실재)에서 다시 또 고도가 어지럽게 올라간다
※ 오곡재의 유래가 재미있다. 신라말엽 고운 최치원선생이 어린시절 어머님을 모시고 이곳을 지나던중 피로하고 배가 고파 뒷산에서 쉬고있는데 어디선가 까마귀가 날아와 하늘 위로 빙빙 돌다가 선생 앞에 닭고기를 물어주고 갔다하여 '오곡(烏谷)'이라 불리웠다는 것이다. 오곡마을 뒷산의 생김새가 까마귀 두 마리가 깃을 펴고 나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오곡이라 이름지어졌다고도 한다.
▼ 11시18분 삼각점 524.4봉 / 점심식사 20분
▼ 11시17분 삼각점524.4봉에서 함 당겨본 맹미바위
▼ 11시53분 낙남정맥 이탈하는 삼거리 / 좌측은 발산재 우측은 오봉산으로 간다 이정표에 오봉산2.2km
청노루
박목월
머언 산(山)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
청(靑)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 12시14분 오봉산 가는 능선길의 특용작물 재배지역 안내문
▼ 12시36분 오봉산 정상 부근에서 지나오능선 맹미바위와 상데미
▼ 추억의 포토 2000년12월5일 진주 성전암에서 오봉산에 올라 찰영한 맹미바위 / 피바위(血岩) 와 상데미(헬기장661.8m)모습
▼ 12시43분 오봉산 정상 524.7m 표석
- 오봉산(五峰山) 숙제봉(叔齊峯) 백이산(伯夷山)-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지인 우리나라에서 같은 지명의 山이 많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烽火山,國師峰,玉女峰,南山,兄弟峯,白雲山,鷹峰山 등 흔한 山名이 많지만 오봉산(五峯山)이란 이름도 꽤 많은 편에 속한다.특히 춘천, 양산, 보성, 함양의 오봉산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함안과 진주의 경계에 자리한 오봉산은 다소 생소하지만, 智異山에서 分岐(분기)한 洛南正脈이 함안으로 접어들면서 여항산으로 잇는 산줄기 서쪽에 나지막하게 솟아 있다. 오봉산은 원리'절산'으로 불려다고 한다. 이는 산 남쪽에 있는 성전암(聖殿庵) 절집에서 비롯된 듯하다.오봉산은 모두가 예외 없이 '다섯 개의 봉우리로 이뤄신 산' 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실제 이곳 오봉산도 대어석재와 소어석재(진주 이반성에서 함안 원북으로 넘어가는 고개) 사이의 다섯 봉우리를 이룬다는 것이 산 아래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원북리는 조선 生六臣 어계(漁溪) 조려(趙旅)1420~1489 先生이 낙향(落鄕)해 은거(隱居) 했던 곳이다. 이곳 伯夷山과 淑濟峰은 조려 선생에게서 비롯됐다. 중국 주나라 무왕 때 首陽山에 몸을 숨기고 고사리를 캐 먹으며 살다가 굶어 죽었다는 백이와 숙제 형제의 이야기는 忠節과 義理에 표본(標本)이다.
조려 선생은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찬탈하자 낙향하여 세상을 등지고 이곳 산 아래 시냇가에서 낚시질로 여생을 보낸 곳이다. 조려 선생의 절의가 백이숙제와 같음을 상징하는 산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주나라의 전설적인 이야기-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멸망시키고 주왕조를 세우자 무왕의 행위가 인위에 위배돤다 하며 주나라 곡식 먹기를 거부하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 캐어 먹고 지니다. 굶어 죽었다는 전설적인 형제 이야기)
** 生六臣은 端宗이 임금이 자리에서 밀려 나간 뒤에 세조의 부당한 처사에 불만을 품고 절개를 지켜 벼슬하지 않는 여섯 忠臣-이맹전,조여,원호,김시습,성담수,남효온.
** 死六臣은 단종의 復位를 꾀하려다 죽은 여섯 忠臣-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성삼문,박팽년
▼ 12시43분 오봉산 정상 아래 추억의 성전암 지붕모습이 약간 보이고 진주 이반성면 지역
▼ 12시51분 오봉산 정상 524.7m에서 한컷 / 오봉산 정상에서 삼거리갈림길 지나서 내리막길에서 산길희미 ..
▼ 13시19분 산길불투명한 너덜.칡넝굴지역으로 알바한것 같고 10여분후 임도삼거리에 이른다
▼ 12시31분 임도삼거리에서 10여분후 유동재에 이른다
▼ 13시42분 유동재 / 30여분후 숙제봉 정상에 이른다
▼ 14시15분 숙제봉 정상 356.2m / 숙제봉에서 안부 체육시설.이정표 공룡발자국(야남산) 갈림길 지나 백이산으로 오른다
- 백이산 (伯夷山) 숙제봉(叔齊峯) -
중국 주나라의 전설적인 형제 성인의 이름이 백이와 숙제다. 이들은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멸하자 신하가 천자를 토벌했다며 주나라 곡식 먹기를 거부하며 굶어 죽었다. 이후 백이숙제는 충절의 상징이 됐다. 그런데 그 이름이 왜 경남 함안의 야트막한 산에 붙었을까?
궁금해서 함안군청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이런 설명이 나왔다.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 항거해 조려 선생이 낙향하여 백이산 아래에 숨어 살았다. 이후 숙종이 그의 절의가 백이숙제를 닮았다며 그가 살던 두 산을 백이산과 숙제봉으로 칭했다." 군청의 설명에는 출처가 없다. 그러니 사실 여부를 정확히 확인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인근에 조려 선생의 충절을 기린 서산서원이 있다는 점에서 아주 틀린 추정은 아닐 것 같다. 참고로 백이산과 숙제봉은 숙종의 호칭 이전까지 쌍안산과 쌍봉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하산길에 확인할 수 있지만 두 산을 멀리서 보면 낙타의 쌍봉처럼 보인다.
▼ 14시38분 백이산 정상 369m 이다
▼ 14시38분 백이산 정상 369m 이정표 / 백이산 정상에서 신창마을 방향으로 가다가 서촌마을 갈림길에서 서촌마을로 하산한다
▼ 14시39분 백이산 정상 369m 표석
▼ 14시40분 백이산 정상에서 지나온 능선과 맹미바위을 이곳 주민들은 피바구(血岩)라고 부른다
▼ 14시41분 백이산(369m) 정상에서 함안읍
▼ 15시06분 백이산에서 신창마을로 내려가다 능선 삼거리에서 우측 서촌마을로 하산한다 / 서촌마을0.6km이정표
▼ 15시14분 서촌마을 앞 1029번 지방도 / 서촌마을이 우측으로 지척인데 반대편인 군북역 방향으로 0.8km정도 알바15분
▼ 15시15분 서촌마을에서 함 당겨본 맹미바위(피바위)와 상데미661.8m(헬기장)
▼ 15시29분 서촌마을표석과 버스정류장 앞 서촌마을주차장이다
▼ 15시30분 서촌마을주차장에서 산행거리 18.0km 7시간45분 산행을 마무리한다
☆백원짜리 물고기요리를 먹느니 보다 백만원짜리 곰의 웅장을 먹겠다.
- 노산 이은상 선생; 1903~1982. 시인. 문학박사. 경남 마산 출생 -
▼ 함안 백이산 숙제봉 지도
▼ 함안 오봉산 백이산 숙제봉 지도
▼ 함안 상데미 지도
▼ 함안 오봉산 백이산 숙제봉 상데미 맹미바위 입체지도
▼ 함안 오봉산 백이산 숙제봉 상데미 맹미바위 지도 / 5만
▼ 함안 오봉산 백이산 숙제봉 상데미 맹미바위 5만 지도
7. 차량이동(올 때);
♤15:35 서촌마을→함안 군북→15:47 장지T.G→남해고속고도로(순천-부산)→16:28 북부산T.G→만덕터널→17:05 자택도착
♤차량이동시간; 1시간40분
♤차량왕복이동거리; 170km<28,949km→29,032km=83km>
8. 경비;
♧고속도로통행료<북부산↔군북.장지 8,300원> 휘발유소모170km 32,000원
♧합계; 40,300원
9. 특기사항; 오봉산 정상 행정구역(진주시 이반성명 장안리)
10. 작성일자; 2013년10월3일(목) 20시00분 자택에서.........
11. 작성자; *******************1003-13-85******************** 도시속의 野人 海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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