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우암산(牛岩山) 상당산성(上黨山城)
일자; 2014년 4월 2일(수) 날씨; 맑음
1. 산명; 우암산(牛岩山)△353m~상당산(上黨山)△491.5m
2.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용담초등학교) 삼부빌라
3. 인원; 청노루 ☆대전시 충청북도 경상북도지역 2일차 산행
4. 차량이동(갈 때);
♤07:45 금산읍(거북장모텔)→08:04 추부T.G→통영대전고속도로→08:10 산내J.C→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08:16 비룡J.C→경부고속도로→08:32 청원T.G→청원 문의→08:44 알뜰주유소(10분)→청원 남이→청주시→09:01 청주시 모충사거리→09:10 용담동(용담초등학교) 삼부빌라 도착
♤차량이동시간; 1시간25분
♤차량이동거리; 76km<35,197km→35,273km>
▼ 청주 우암산 상당산성 트랙지도
5. 산행코스; 원점회귀
♤09:22 용담동(용담초등학교) 삼부빌라→09:23 우암산들머리→09:30 달구지쉼터→09:46 팔각정→09:54 송신소→09:59 우암산(牛岩山)△353m→10:03 우암산성 쉼터(상당산성 방향)→10:19 우암산생태터널→10:48 안부사거리(율량.상리)→10:59 정자쉼터→11:21 상당산성(上黨山城)→11:23 산불감시초소→11:28 미호문(서문)→11:36 상당산성자연휴양림갈림길→11:49 상당산(上黨山)△491.5m(삼각점 점심20분)→12:19 암문(금북정맥 이탈)→12:26 공남문(동문)→12:32 누각→12:33 성내도로(성내마을)→12:39 충열문(남문)→12:48 남쪽암문(상당산성 이탈.금북정맥 합류)→상봉재가는길(금북정맥)→13:02 출렁다리→13:14 능선갈림길(금북정맥 이탈)→13:20 삼거리→13:32 휀스울타리(산성터널)→13:44 삼각점×275봉→13:45 삼거리(풍주사 방향)→13:56 무덤군→14:02 풍주사일주문→14:02 명암호수→14:08 명암타워 웨딩홀→14:15 용담동→14:28 용담동(용담초등학교) 삼부빌라 도착
♤산행시간; 5시간06분
♤산행거리; 15.1km<MapSource 14.4km>
6. 트랙 2014-04-02 청주 우암산 상당산성(15.1km원점).gpx
▼ 청주 우암산 상당산성 산행지도 / 5만 . 청주 상당구 용담동 용담초등학교 기점
▼ 청주 우암산 상당산성 10먼 지도
청주시의 동편에 위치하는 우암산(牛岩山)[353m]은 청주의 진산(鎭山)으로 청주시의 명암동, 내덕동, 우암동, 수동, 대성동, 문화동, 용암동에 걸쳐 있고 그 지맥이 탑동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해발 353m의 정상을 중심으로 남과 북 3좌의 연봉과 중앙초등학교 동쪽의 당산(唐山)에까지 이르고 있는 산이다.
청주시의 배경이 되는 우암산(牛岩山)[353m]은 상령산(上嶺山)에서 분기된 것이면서도 상령산과의 중간에 속칭 ‘바람매기고개’라 불리는 낮은 안부를 사이에 두고 있어 독립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침엽수와 활엽수로 혼합된 산림을 형성하고 있어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 주고 있다. 우암산(牛岩山)[353m]에는 청주의 역사를 밝혀주는 옛 유적이 도처에 산재하고 있다. 청주지역 방어의 기점이 되었던 산성의 유구가 있고, 용암사에는 통일신라말에 조성된 석조비로자나불상이, 목암사에는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나한입상이 있으며, 그 외에 용암사, 보현사, 관음사, 광덕사, 문수암, 용화사와 대한불교수도원 등의 많은 사찰들이 위치하고 있다.
사시사철 청주시민들에게 맑은 자연환경을 제공하고, 문화생활의 공간을 마련해주는 우암산(牛岩山)[353m]에는 3·1공원, 우암정이라 불리는 국궁장, 국립청주박물관과 우암어린이회관, 명암약수터 등이 순환도로로 연결되어 있어 청주시민의 여가활동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휴식공간 제공 및 역사의식 함양에 기여를 하고 있다.
우암산(牛岩山)[353m]은 본래 와우산(臥牛山)이라 불렸던 산이다. 와우산(臥牛山)의 명칭은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의 조선시대 지리지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청주연혁지(淸州沿革誌)』,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등의 문헌기록에 나타나며 ‘우산(牛山)’이라 약칭되기도 하였다. 와우산(臥牛山)이라는 산 이름은 산의 형상이 소가 누워 있는 모양에서 유래되었다는 속설이 일반적으로 구전되고 있으며, 소를 불교와 관련하여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에서는 당이산(唐羡山)으로 표기되어 있기도 한 우암산(牛岩山)[353m]은 대모산(大母山), 모암산(母岩山), 장암산(壯岩山), 목암산(牧岩山), 목은산(牧隱山) 등의 지명들로도 전하고 있다. 우암산(牛岩山)[353m]으로 불리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재의 우암동이 본래 청주군 북주내면(北州內面) 외덕리(外德里)였다가 1935년에 청주읍에 편입되면서 와우산(臥牛山)과 용암사(龍岩寺)의 이름을 따서 우암동으로 개칭되었으므로 대략 이때부터 우암산(牛岩山)[353m]으로 불려진 듯 하다는 설이 있으나, 용암사의 창건이 1945년이므로 이 설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다만 누구나 쉽게 생각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소가 누워 있는 산의 모습과 바위가 많은 데서 우암산(牛岩山)[353m]의 지명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다.
자연이 청주에 준 천혜의 환경은 무심천(無心川)과 우암산(牛岩山)[353m]이다. 청주시의 중심에 무심천(無心川)이 관통하고 동쪽의 우암산(牛岩山)[353m]은 청주의 진산으로 오랜 세월 자리하고 있어, 선사시대부터 청주지역에 정착한 사람들은 무심천(無心川)을 젖줄로 삼고, 우암산(牛岩山)[353m]을 든든한 울타리로 삼아 의지하면서 정착하고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삼국시대에 백제에 속하였던 청주는 상당현(上黨縣)이라는 지명으로 문헌기록에 처음 나타나는데 우암산(牛岩山)[353m]은 백제시대에는 상당현의 치지, 또는 통일신명 때의 서원소경(西原小京)의 서원경성(西原京城)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또 우암산(牛岩山)[353m] 주변지역에서 선사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며, 산 정상부와 능선을 감싸고 설축된 산성이 남아 있고, 여러 계곡의 곳곳에 현존 사찰과 옛 절터가 발견되고 있다. 이밖에도 조선시대의 향교가 우암산(牛岩山)[353m]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에 의한 신사(神社)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우암산(牛岩山)[353m]은 오랜 세월을 사람과 함께 하였기 때문에 그 계곡 곳곳 마다 전설을 품게 되었다. 이와 관련한 전설들은 크게 지명전설(地名傳說), 풍수전설(風水傳說), 암석전설(巖石傳說), 지소전설(池沼傳說) 등으로 나뉜다. 지명전설로는 신라 혜공왕과 연관되는 「가좌골 전설」과 조선 영조대의 열녀 해월과 연관되는 「상봉고개 전설」이 있다. 풍수전설로는 조선 선조 대의 이지함(李之函)과 관련되는 「우복동 전설」과 임진왜란 당시 원병을 이끌었던 이여송(李如松)과 관련한 「명혈 끊기 전설」이 있다. 암석전설로는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광포전설의 한 유형인 「아기장수전설」과 이에 관련한 「용마전설」이 있고, 지소전설로는 임진왜란 당시 청주인근에서 활약하였던 승병들과 관련한 「장군수(將軍水)」전설이 있다.
▼ 09시22분 용담동 용담초등하교 뒷편 삼부빌라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우암산 정상까지는 40분이면 충분하다.
▼ 09시23분 용담동 백운산 광덕사50m 직전 안내판에서 좌측 휀스울타리에서 우암산 오르면 우암산1.7km 이정표가 있다.
▼ 09시30분 달구지쉼터에서 우측으로 백운사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다. 도시의 산은 샛길이 엄청나게 많아 이후 갈림길은 되도록이면 생략하고 넘어가고 15분 정도 능선길 오르면 팔각정에 이른다.
▼ 09시46분 팔각정에서 능선이 제법 가팔라지고 10여분 방송국 송신소에 닿은다.
▼ 09시51분 용담동 용담초등하교 주변에서 우암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 09시54분 방송국 송신소와 체육시설을 지나 5분이면 우암산 정상에 도착한다.
▼ 09시59분 우암산 정상이다. 이어서 우암산성이 이어지고 우암산성에 대한 안내판도 있다. 우암산 정상에서 상당산성까지는 1시간20분이면 도착한다.
* 청주의 진산, 우암산(牛岩山) *
높이 353m이다. 청주시의 진산으로 장암산·대모산·무암산·와우산·당이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와우산이라는 별칭처럼 산세가 소가 누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청주시 명암동·내덕동·우암동·수동·대성동·문화동·용암동에 걸쳐 있다. 우암산은 속리산 천황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려온 한남금북정맥 산줄기에 속한다. 청주 동쪽으로 이어지는 산 줄기가 선도산-것대산-상당산-구녀산인데 그 중 상당산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353.2m의 산이 바로 우암산이다. 우암산은 예로부터 와우산(臥牛山), 대모산(大母山), 모암산(母岩山), 장암산(壯岩山)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오는 청주의 진산이다. 침엽수림과 낙엽수림이 섞인 숲이 우거지고, 약수터와 순환도로·등산로 등이 잘 정비되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산기슭에는 표충사(表忠寺)·용화사(龍華寺) 등의 사찰이 많고, 정상 부근에 삼국시대 것으로 보이는 와우산성(臥牛山城)이 있다. 와우산성은 《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가 1.587km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내성 2km, 외성 1,800km로 총 3.8km에 이른다. 지금은 성 주변으로 민가와 농경지가 늘어나 크게 훼손된 상태이다.
* 우암산(牛岩山) 장군의 혈에 대하여 *
선조 때 토정 이지함이 청주 서쪽의 부모산에 올라 우암산의 지세를 살피다가 황소기질 같은 강인한 기운이 솟는 명당혈을 발견했다. 우암산이 전체적으로 소가 앉은 형상이라면 그 혈은 배부분에 해당된다. 토정은 제자 박춘무와 함께 그 곳을 확인한 뒤 '이 곳은 장군에게 적합한 곳이니 범하지 말라'는 푯말을 세우고 떠났다. 그 뒤 진천의 조풍수란 사람이 이곳에 이르러 푯말을 뽑아 버리고 조상의 묘를 이전하려하자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황소 우는 소리가 나고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더니 가묘는 검은 바위로 변했고, 조풍수의 눈도 멀어 버렸다.
▼ 10시01분 우암산성은 삼국시대 및 후삼국시대 교통의 요지인 청주를 지키기 위해 쌓은 4중의 산성이다. 우암산성 쉼터에서 우측 능선으로 이어가면 상당산성으로 갈수있다.
▼ 10시13분 우암산 정상을 벗어나 상당산성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멀리 상당산성 희미하게 조망된다.
▼ 10시18분 우암산 정상에서 내리막으로 이어지면서 우암터널 위로 이어간다.
▼ 10시19분 우암산생태터널을 지나 상당산성으로 이어간다.
▼ 10시19분 우암산생태널에서 좌.우 청주시내가 조망된다.
▼ 10시29분 우암산생태터널을 지나 상당산성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 10시48분 안부사거리에서 좌우측 갈림길은 청주시내로 이어지고 능선으로 올라가면 상당산성으로 연결되며 10여분후 정자쉼터에 닿은다.
▼ 10시59분 정자쉼터에서 20여분이면 상당산성에 도착한다.
▼ 11시20분 상당산성에 당도한다. 산성은 원형석축으로 성벽이 쌓아져있고 금북정맥 능선이 절반은 차지하는 좌측(북쪽)으로 향한다.
▼ 11시21분 상당산성길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이어가면 상당산 정상을 만난다.
※ 청주 상당산성(淸州 上黨山城)은 삼국시대 백제가 쌓은 산성이다. 1970년 10월 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12호로 지정되었다
상당산성은 둘레가 4.1km, 높이 3~4m, 면적이 704,609m2에 달하는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상당이라는 명칭은 백제 때 청주의 지명인 상당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남문 밖에서 발견된 옛 기와의 명문을 통해 통일신라의 서원경과 관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영호남과 서울로 통하는 통로를 방어하는 요충지로 크게 주목받았다. 특히 임진왜란을 거쳐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군사적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충청도의 군사 책임자인 병마절도사는 청주읍성에 있었으며, 그 배후인 성당산성에는 병마우후를 두어 방어하게 하였다.
상당산성에는 대략 3,500명의 병력과 승군이 배속되어 산성의 유지와 보수를 담당하였다.
지금의 모습은 임진왜란 중인 선조 29년(1596년)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년)부터 영조 23년(1747년)까지 대대적으로 개축되었다. 이때 성벽 축조는 물론 성내에 구룡사 및 남악사와 장대사의 3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으며, 관아건물과 장대·포루·창고 등이 완성되어 면모를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보수되었다.
현재 상당산성은 동문·서문·남문의 3개문과 동암문·남암문의 2개 암문, 치성 3개소, 수구 3개소가 남아 있다.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가 30만 명의 병력으로 쌓았다고도 하며, 따라서 김유신 장군의 전적지인 낭비성이라는 설도 전해진다
상당산성이 임진왜란 중인 선조 29년(1596)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년)에서 45년(1719년)까지 충청병사 유성추와 그 후임 이태망 등의 감독으로 대대적으로 성벽에 대한 개축이 이루어졌고, 이듬해에는 성내에 구룡사와 남악사의 2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다는 것이 성문 무사석의 기록에 남아 있다. 그 후 여러 번의 수축이 이루어져 성내의 여러 시설인 관아사, 군기고, 창고, 수구, 장대, 포루 등이 완성되었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인 진동문(鎭東門), 서문인 미호문(弭虎門), 남문인 공남문(控南門)의 3개 문과 동암문 남암문의 2개 암문, 치성 3개소, 수구 3개소가 있는데,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정비공사로 동·남문루와 동문이 재건되었고 1992년 말에는 동장대 역할을 했던 동화정(棟和亭)도 재건되었다. 또한 1995년도의 발굴조사로 서장대 역할을 했던 제승당(制勝堂)의 규모(15평)와 위치가 확인되었다. 현재의 저수지는 본래의 수문이 홍수로 없어진 후 1943년에 만든 것이다.
▼ 11시23분 상당산성 산불감시초소가 턱 버티고 섰네.
▼ 11시24분 산성길에서 좌측으로 돌아보면 지나온 우암산에서 걸어온 길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 11시26분 상당산성길을 따라 주변풍경을 즐기면서 .. 미호문(서문)을 접하게 된다.
▼ 11시33분 상당산성길 고도를 조금 올린후 좌측으로 상당산성자연휴양림갈림길을 만난다.
▼ 11시40분 휴양림갈림길 지난후 가야할 상당산 여기서 10분이면 산성길에서 벗어나 우측으로 조금 오르면 정상이다.
▼ 11시49분 상당산 정상에 도착한다. 금북정맥은 여기서 좌구산으로 이어지고, 정상에서 점십밥 20여분하고 산성길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 11시50분 상당산 정상에서 한 컷하고.
▼ 12시19분 점심후 상당산성 금북정맥은 좌측 능선으로 빠지고 상당산성에서 흘러나간 금북정맥 능선을 바라본다.
▼ 12시25분 잠시후 공남문(동문)을 지나 8분이면 성내도로와 성내마을 성내방죽을 만난다.
▼ 12시32분 누각을 지나면 바로 성안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에 이른다.
▼ 12시33분 성내도로에서 이르러 성내방죽둑을 건너 상당산성길을 이어간다.
▼ 12시34분 상당산성 성내마을은 거의 음식점이다.
▼ 12시39분 충열문(남문)에서 이르러 저기 올려다보이는 암문에서 상당산성을 벗어나 능선길 따라 용담동으로 돌아간다.
※ 상당산성(上黨山城)
사적 제212호. 지정면적 180,826㎡. 원래 그 자리에 백제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상당산성은 1716년(숙종 42)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백제시대에 청주목(淸州牧)이 상당현(上黨縣)이라 불렸고, 숙종 때 축성기록에 ‘上黨基址 改石築(상당기지 개석축)’이라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8부능선에서 시작하여 성안의 골짜기를 포함하고 있는 동서의 등성이를 타고 사행(蛇行)하는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4.2㎞의 유구가 잘 남아 있는 서벽과 동벽의 높이는 약 3∼4m에 이른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나 성벽 위에 설치하였던 성가퀴[城堞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성벽의 안쪽은 돌을 깨뜨려 틈을 메운 뒤 흙을 채우고 다지는 공법을 사용하였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서쪽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곽시설로는 남문을 비롯하여 동문과 서문, 3개의 치성(雉城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 2개의 암문(暗門 : 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게 숨겨 만든 성문), 2곳의 장대(將臺), 15개의 포루(砲樓)터 외에 성안 주둔병력의 식수를 대기 위한 대소 2곳의 연못이 있다. 정문인 남문 주변에는 3개의 치성과 장대, 4곳의 포루가 설치되어 있다.
숙종 때의 개축 이후에도 1731년(영조 7) 남문 문루를 세우는 등 대대적인 보수를 했으며, 1802년(순조 2) 1,176개의 첩(堞)을 시설하여 산성으로서의 완벽한 격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 뒤 성벽이 퇴락하고 문루가 모두 없어져 버렸는데, 1971년 석축 부분을 개축하였고, 1977년부터 1980년까지 남문·서문·동문의 누문을 모두 복원하였다.
일부에서는 이 산성을 삼국시대 김유신(金庾信)장군의 전적지인 낭비성(娘臂城)으로 비정하기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 12시47분 상당산성 금북정맥과 합류되어 남쪽 암문으로 나가기 직전, 가야 금북정맥 능선길
▼ 12시48분 상당산성에서 남쪽 암문을 통과하여 금북정맥 능선 15분후 출렁다리에 도착하고 산행종점 용담동까지는 1시간40여분 소요된다.
▼ 13시02분 출렁다리(산성고개)에서 12분 정도 능선길 이어가면 금북정맥 능선에서 벗어나게 된다.
▼ 13시12분 청주 2014년4월, 금북정맥 능선길 무덤 옆에 핀 진달래꽃
▼ 13시14분 능선갈림길에서 좌측은 금북정맥 우측은 명암동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 13시19분 금북정맥에서 이탈하여 5분후 만나는 갈림길에서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 13시32분 능선길 휀스울타리가 속으로 산성2터널이 두눈을 빠꼼이 뜨고 쳐다본다.
▼ 13시32분 또 휀스울타리넘어서 보면 지나온 상당산성이 잘가라고 손 흔들어주네. ㅋ 이래저래 능선길 10여분 이어가면 고도가 낮추어지면서 삼각점이있은 275봉에 이른다.
▼ 13시44분 275봉에 도착하고 이어서 갈림길을 만난다.
▼ 13시45분 능선갈림길에서 좌측 능선을 풍주사 방향으로 간다.
▼ 13시57분 청주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무덤에서 5~6분 풍주사 지나 도로변에 내려 앉은다.
▼ 14시02분 풍주사일주문 지나서 자동차전용도로 굴다리 밑으로 빠져나가면 명암저수로 이어진다.
▼ 14시06분 명암저수지와 명암타워가 청주시내와 잘 조화가되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 14시14분 명암저수지를 벗어나면서 지나온 능선
▼ 14시15분 용암동 도로변에서 10여분 지나면 샛길로 이리저리해서 산행출발지 삼부빌라에 이른다.
▼ 14시28분 용담동(용담초등학교) 삼부빌라에서 산행거리 15.1km 5시간06분 산행을 종료하고, 내일 진천 두타산 산행지 증평읍으로 차량이동한다.
▼ 청주 우암산 우암산성 지도
▼ 청주 우암산 상당산성 개념도
▼ 청주 우암산 상당산성 입체지도
▼ 청주 우암산 상당산성 5만 지도
▼ 청주 우암산 상당산성 지도
▼ 청주 우암산 상당산성 안내도
▼ 청주 우암산 상당산성 5만 지도
7. 차량이동(올 때); 내일 진천 두타산 산행지
♤14:40 용담동(용담초등학교) 삼부빌라→청원 북일→청원 북이→15:25 증평읍 태평모텔 도착
♤차량이동시간; 00시간45분
♤차량이동거리; 21km<35,273km→35,294km> 총이동거리; 97km
8. 경비;
♧태평모텔 30,000원 저녁식사 9,000원
♧고속도로통행료(추부→청원); 2,900원 휘발유소모 97km 17,800원
♧합계; 59.700원
9. 특기사항
1)충청북도 증평군은 증평읍과 도안면 2개의 읍면으로 증평군이 형성, 일반적으로 10개 내외의 읍면으로 군이 형성되은데 비하면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군‘이 아닐까한다,
2)두번째은 태평모텔 이야기다. 장년의 부부와 노모가 태평모텔의 가족인데 부부은 아침이 되니 직장?으로 출근하여 밤 늦은 시간에 돌아오고, 낮에는 거동이 불편한 노모가 모텔을 운영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가슴이 찡하다. 증평읍내 숙박업이 잘안되고 이 가족들의 생활 경제가 힘들고 어렵다는 느낌을 받은다.
10. 작성일자; 2014년4월2일(수) 21시50분 증평읍 태평모텔에서.........
11. 작성자; **********************2014-14-31***************** 도시속의 野人 海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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