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고려동유적지 말이산고분군 무진정
2021년1월15일(금) 날씨; 구름조금
♪ 코로나 19와 기타등등으로 발이 묶여 한 동안 움직임이 둔하다가 오늘 집을 나선다
Y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
아침밥 묵꼬 9시가 되기전에 집을 출발하여 10시가 조금 지나 함안 고려동유적지 40여분 답사하고 함안 가야읍행정복지센터에 주차하고 11시 쯤 함안 말이산고분군 1시간20여분 답사하고 고성 당항포 점심밥 묵으러 가는길에 무진정 정자를 답사한다
고성 당항포에서 이것저것 먹거리 좀 싸들고 오후 4시 쯤 하루 힐링을 마치고 집에 들어선다
함안 고려동유적지~말이산고분군~무진정 트랙지도
▼ 트랙
함안 고려동유적지~말이산고분군~무진정 지도
함안 산인면 가야읍 함안면 10만 지도
청노루
박목월
머언 산(山)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
청(靑)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 09시54분 집에서 ~~
09시49분 오랜만에 마산TG 지나가 본다
09시57분 내서TG를 지나 20여분후 고려동유적지에 도착 한다
함안 고려동유적지 지도
▼ 10시15분 함안 고려동유적지에서 40여분 시간을 보낸 후, 함안 말이산고분군으로 이어갈 것이다
함안 고려동유적지(咸安 高麗洞 遺蹟址)
경상남도 기념물 제56호. 이 곳은 고려 말 성균관(成均館) 진사(進士) 이오(李午)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의 유민으로 절의를 지키기로 결심하고 백일홍이 만발한 이 곳을 택해 거처를 정한 뒤 그 후손들이 살아온 장소이다.
고려가 망하자 선생은 여러 현인들과 송도의 두문동에서 망복수의(罔僕守義)의 결의를 표명하고 남쪽으로 내려와 거처를 찾던 중, 산간벽지에 띠만이 우거진 숲 속에서 백일홍이 만발한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마을의 터전을 일궜다. 그 자리는 오늘날 자미단(紫微壇)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오는 끝까지 고려의 유민임을 나타내기 위해 은거지 주변에 담을 쌓아 밖은 조선의 영토라 할지라도 안은 고려 유민의 거주임을 명시하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표비를 세웠다. 여기서 ‘담안’ 또는 ‘장내’라는 마을이름이 유래되었다.
이오는 세상을 뜰 때까지 조선에 벼슬하지 않았다. 아들에게도 신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과 자신의 신주를 이 곳을 떠나 딴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또한 담 안에 주거를 만들고 우물을 파 전답을 개간하여 자급자족할 수 있는 후손들의 터를 만들었다.
선생의 유언을 받든 종손들은 19대 600년에 이르는 동안 이 곳을 떠나지 않았고 이에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왔다. 현재 이 마을에는 30호의 후손들이 재령이씨(載寧李氏) 단성의 동족마을로 그 순수성을 지켜가고 있다.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표비(高麗洞壑表碑), 고려동(高慮洞)담장, 고려종택(高麗宗宅), 자미단(紫微壇), 고려전(高麗田) 30,000여 평, 자미정(紫微亭), 율간정(栗澗亭), 보정(鰒井) 등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물들이 6·25전쟁 때 소실되어 이후 재건된 것이다.
현재 주택으로는 호상공의 생가로 알려진 주택이 유일하게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200년을 넘지 않았다. 자미정을 포함하는 종가는 비교적 정교하게 재건되긴 했지만 조선 초기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고려동유적지 전경
현지안내문
고려 말에 성균관의 진사였던 이오 선생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의 유민으로 절의를 지키기로 결심하고 백일홍이 만발한 이곳을 택하여 담을 쌓고 거처를 정하였다. 그리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이란 비석을 세웠다. 여기에서 담안 혹은 장내라고 하는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
세상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조선 왕조에서 벼슬을 하지 않았고, 아들에게도 새 왕조에서 벼슬하지 말 것과 신주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담 안에 주거와 우물 전담 등을 마련함으로써 후손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터를 닦았다. 이후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후손들은 600년이 넘게 이곳에서 살아왔고 고려동이라흔 이름도 전하고 있다.
현재 이 마을에는 재령 이씨 후손 30여호과 모여 살면서 선조의 뜻을 기리고 있다.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표비, 고려동 담장, 고려종택, 자미단, 고려전 3,000여 평, 자미정, 율간정, 복정 등이 있었으나, 이들 건물은 한국전쟁 동안에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이후 복원되었다. 호상공의 생가로 알려진 주택만이 제 모습을 지키고 있으나, 그마저 200여년 전의 것이라고 한다.
함안 고려동유적지(咸安 高麗洞 遺蹟址)는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유적지이다. 1982년 8월 2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56호 고려동유적지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 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장소이다.
이오는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을 하였다.
그는 아들에게도 조선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과 자기가 죽은 뒤라도 자신의 신주를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그의 유언을 받든 후손들은 19대 60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이에 고려동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 오고 있다.
현재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자미단, 고려전답 3,000여 평, 자미정, 율간정, 복정들이 있다. 후손들이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벼슬길에 나아가기 보다는 자녀의 교육에 전념함으로써 학덕과 절의로 이름있는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 함안군청 주차장이 마땅찮아 옆에 있은 가야읍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 주차하고 소피보고 말이산고분군 진입로 물어보고 ..
11시에 가야읍행정복지센터를 나선다
저 앞에 보이는게 말이산고분군 동편 진입로고 서쪽은 함안박물관주차장에 시작된다
함안 말이산고분군 지도
▼ 11시04분 함안 말이산고분군 주차장이 여기에 있네 .. 1시간10여분 말이산고분군을 답사한다
함안 말이산고분군(咸安 末伊山 古墳群)
사적 제515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함안천과 광정천에 둘러싸인 해발 50m 정도의 낮은 구릉 능선의 정선부를 따라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113기의 큰 무덤들이 나란히 입지하고 있다. 이 고분 가운데에는 말이산 4호분처럼 감실을 가진 수혈식 석곽이 있는가 하면, 말갑옷을 부장한 대형의 목곽묘도 확인하였다. 하나의 봉토 아래에 세장방형의 수혈식 석곽 1기만이 매장 주체부를 가지는데, 주피장자의 발치에 순장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부장되었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1587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나 1917년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45기의 고분을 조사하였고, 1917년 말이산 4호분과 25호분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해방 후 1963년 1월 21일에 함안 도항리 고분군과 함안 말산리 고분군이 각각 사적 제84호와 사적 제85호로 지정되었다. 말이산 고분군에 대한 학술조사는 주로 1990년대에 들어와서 정밀 조사되어 도항리 고분군과 말산리 고분군은 하나의 문화권에 속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2011년 7월 28일 사적 제515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으로 재지정되었다.
함안 말이산 고분은 원형의 봉토 아래에 한 기의 세장방형 수혈식 석곽을 배치하고 있다. 수혈식 석곽은 대체로 단벽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1:3이 넘는 세장방형을 띠고 있다. 석곽은 단벽과 장벽에 나무를 걸칠 수 있는 홈을 설치하였는데 들보시설 또는 감실, 풍비 등으로 불리고 있다. 석곽의 내부는 대체로 세 곳으로 공간을 분할하여 가운데에는 주피장자를 두고 석곽의 양 단벽쪽에는 부장유물이나 순장인을 안치하고 있어서 특징적이다. 아울러 토기에서는 함안형식토기가 5세말∼6세기초에 형성될 정도로 지역색이 강하며, 그 가운데에서도 화염형 투창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부장유물에서는 대금구나 이식 등과 같은 장식성을 강하게 띠는 금공품보다는 갑주, 마갑, 마구류와 같은 무기구류를 다량 부장하고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5-6세기에 축조된 고분군으로 함안형식토기를 비롯하여 세장방형 수혈식 석실, 석곽의 벽에 있는 감실, 순장자, 지호문 등은 고대 아라 가야의 실체와 대외관계를 밝히는 데에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함안 말이산고분군(咸安 末伊山 古墳群)
* 아라가야 문화를 알 수 있는 유적,
함안군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분지로 북과 서는 낙동강과 남강으로 남과 동은 600m가 넘는 산으로 둘러 있다. 이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도읍지였던 가야읍 도항 · 말산리 일원에 위치하며 찬란한 가야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이다. 아라가야 왕들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100여기의 대형고분들은 높은 곳에 열을 지어 위치하고, 그 아래로 1,000여기나 되는 중소형의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다. 이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에 처음 조사되었는데, 당시 제34호분은 봉토(封土)의 지름이 39.3m, 높이가 9.7m나 되는 최대 규모의 왕릉이었다. 최근에는 고분군 북쪽끝 자락에 있는 마갑총에서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것과 같은 말갑옷이 출토되었고, 다섯 사람의 순장 인골(人骨)이 확인된 제8호분의 조사로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현재까지의 발굴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자모양의 굽다리접시(工字形 高杯)불꽃모양의 창을 낸 굽다리접시(火焰型透窓高杯)는 아라가야가 여러 가야 중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가진 독자적인 정치세력 이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둘째, 각종의 큰칼 · 갑옷 · 말갑옷 · 새가 달린 비늘쇠(有刺利器)같은 철제품과 금·은 ·유리· 옥으로 만든 장신구들은 아라가야 왕의 강력한 위상을 보여 주었다.
셋째, 기원전후부터 6세기 중반까지 만들어진 이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성립 · 발전 · 멸망의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넷째, 이 고분군의 출토품과 같은 유물은 동래 · 경주 · 일본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아라 가야의 산물이 다른 가야와 신라, 일본열도의 왜까지 수출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섯째, 고분군의 규모와 화려한 유물들은 6세기경의 아라가야가 남부가야의 중심으로 주변국들과 교섭하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해주었다. 현재는 이 고분군이 위치한 곳을 끝 말자의 말산(末山)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말산은 말이산으로 불렸었다. 말이산(末伊山) 마리산은 머리산이었다. 원래는 아라가야의 시조가 등장하고, 역대 왕들이 묻혔던 우두머리의 산이었다.
11시19분 말이산고분군에서 동영상
이름 모를 새 부부 한쌍을 만난다
12시26분 이름 모를 새 노니는 모습 동영상
함안박물관
※ 기간 : 2020. 5. 5. (화) ~ 재개관일까지
※ 휴관대상 : 함안박물관(본관, 건물 내)
※ 사유 : 박물관 리모델링 공사 및 전시개편 코로나19 해제시 까지
※ 문의 : 055-580-3901
함안박물관은 아라가야의 말이산고분군(사적 제515호)을 배경으로 조성되어 있는 함안군립의 박물관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말갑옷을 비롯하여 불꽃무늬토기, 수레바퀴모양토기, 새모양이 붙은 미늘쇠 등 가야시대의 각종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아라가야의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외에도 성산산성 목간, 도천재 단서죽백, 영종대왕국휼복상도 등 함안지역의 각종 문화재들이 함께 전시되고 있으며, 야외에는 700년 만에 꽃을 피운 아라홍련 연못과 고인돌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개관일 2003년 10월 30일
함안은 1,500여년 전 아라가야의 도읍이 있었던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아라가야의 유물을 중심으로 함안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흥미로운 전시물이 가득한다. 뒤쪽에는 언덕을 오르면 아라가야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넓게 펼쳐진 함안말이산고분군이 있다.
*함안 박물관은 주로 아라가야의 문화를 보여 주는 곳으로, 도항리 고분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말 갑옷이 발견된 마갑총과 가야의 독특한 토기 문화를 볼 수 있다. 야외 전시실에는 아라가야의 무덤을 그대로 재현한 전시물이 있어 무덤 속까지 체험할 수 있다.
현지안내문
함안 말이산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는 고분군으로, 찬란했던 아라가야의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이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도읍이었던 가야읍의 말이산 구릉일대에 조성되어 있다. 말이산은 '머리산'의 소리음을 빌어 표기한 것으로, '우두머리의 산=왕(족)의 무덤이 있는 산'이라는 의미이다.
말이산 구릉은 남~북으로 약 1.0km 정도 길게 뻗은 주능선과 서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여덟 갈래의 가지능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의 모습은 지금보다 동북쪽으로 더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나 일제강점기 진주-마산간 도로와 철도의 설치, 급격한 도시화에 의해 북쪽 일부가 훼손되고 말았다. 말이산고분군에는 주능선과 가지능선의정부에 대형의 봉토무덤이, 가지능선의 사면부에 중소형 무덤이 조성되어 있다. 현재 무덤 호수를 붙여 관리하는 봉토무덤은 37기이지만, 실제 봉토의 흔적이 잔존해 있는 것이 100여기에 이르며, 봉토가 삭평되어 그 원형을 잃어버린 것까지 포함하면 1,000여 기 이상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말이산고분군에는 널무덤, 덧널무덤, 구덩식돌덧널무덤, 앞트기깃돌발무덤 등 기원 전후부터 6세기 전반에 이르는 다양한 무덤이 조성되어 있어 아라가야의 성립과 발전, 멸망에 이르는 고분문화 전반을 잘 살필 수 있다. 특히 대형의 봉토로 씌워진 구덩식돌덧널무덤의 경우,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세기 후반 무렵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는데, 길이 10m, 너비 2m에 이르는 무덤 내부에서 순장자의 인골 5구가 출토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출토유물로는 불꽃무늬토기, 수레바퀴모양토기 등 독특한 양식의 토기들과 쌍용문 둥근고리큰칼, 투구, 갑옷, 말투구, 말갑옷, 새모양장식 미늘쇠 등 다양한 철기들을 들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신라, 백제, 금관가야, 대가야 등과 함께 고대 한반도 남부를 호령하면서, '철의 왕국'으로 불렸던 아라가야의 우수한 문화상을 엿볼 수 있다.
함안 말이산고분군은 1964년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도항리고분군(사적 제84호)과 말산리고분군(사적 제85호)을 분리 지정·관리하여 오다가,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동일한 시대와 성격의 무덤들이 조성되어 있는 하나의 고분군임이 밝혀지면서 2011년 사적 제515호로 통합·재지정하였다
12시07분 말이산고분군에서 동영상
12시09분 말이산고분군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12시11분 함안 말이산고분군 탐방이 마무리된다
▣ 12시20분 함안 가야읍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서 고성 당항포로 가는길에 함안면 괴산리에 있은 무진정 정자에 잠시 들린
함안 무진정 지도
▼ 12시24분 무진정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다
함안 무진정(咸安 無盡亭)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에 있는 정자이다.
1976년 12월 20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58호 무진정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풍류를 즐기기 위해 언덕 위에 지어진 정자이다. 이 정자는 조선 명종 22년(1567)에 무진 조삼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세우고, 조상의 호를 따서 무진정이라고 하였다.
무진은 조선 성종 14년(1483)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여 함양·창원·대구·성주·상주의 목사를 지냈고, 사헌부집의 겸 춘추관편수관을 지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의 가운데 칸에는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12시26분 무진정에서 동영상
▣ 13시 조금 지나 당항포에 도착하여 점심밥 묵꼬 나니 14시가 지나간다 ..
▼ 14시43분 마창대교을 통과하여 김해 장유로 이어간다
15시10분 북부산TG를 통과후 16시경 집에 당도한다
▼ 함안 고려동유적지에서 고성 당항포까지
♪ 동영상 음악 '나의 사람아' 한곡 땡긴다
나의 사람아
아티스트 김민식
언제보아도 웃음띤 얼굴
언제 들어도 다정한 음성
언제까지나 함께있어요
아름다운 나의사람아
해가없어도 살수있지만
달이 없어도 살수있지만
당신없이는 견딜수 없네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지난꿈엔 당신과 여행을 떠났어요
하얀 바다가에서 파랑새를 봤어요
해가없어도 살수있지만
달이 없어도 살수 있지만
당신없이는 견딜수 없네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지난꿈엔 당신과 여행을 떠났어요
하얀 바다가에서 파랑새를 봤어요
해가없어도 살수있지만
달이 없어도 살수있지만
당신없이는 견딜수 없네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내사람아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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